대상: 31세의 남자 O군

증세: 부모님을 살해하고 불을 지르고 싶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후에 정신병원에 입원. 접촉: 정신병원에 1달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약물 치료만 하는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실망해서 심리치료를 병행하기 위해서 어머니가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연락이 왔음

진단명: 정신분열증, 에로틱 망상 장애

치료 기간: 1회에 2시간씩 치료를 받게 되어있는데 O군은 1주일에 3회씩 2개월 동안 치료를 받은 이후에 다시 1주일에 2회씩 분석 치료를 1년 동안 받고 있음

치료 결과: 망상은 사라지고 가족들과의 관계가 점차로 개선되어지고 있음

 

치료의 과정

O군은 앞 동의 중년 부인과 그녀의 딸이 나를 쳐다보고 유혹을 한다는 망상 때문에 그 집 아파트 출입문에 라이터로 불을 지르려고 몇 번 시도를 했고 또 욕설을 휘갈겨 쓰다가 이웃 집 아주머니에게 발각되어 경찰에 인계되었고 정신병원에서 1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이후부터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다. O군에 대한 상세한 치료 과정을 보고 싶어하시는 분은 아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치료 초반기에 알게 된 것은 O군은 성장 과정에서 거의 부모님과 대화가 없었고 치료자와의 대화에서도 거의 말이 없고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을 하는 정도였다. 그것도 한참 뜸을 들인 후에 겨우 모기 소리만 하게 대답을 하는 정도였다. Xx 정신병원에 1달 동안 입원해 있다고 퇴원 후에 치료자에게 심리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약 6개월 정도 병원에서 실시하는 그룹 치료에 1주일에 2일간 참가했다. 그룹 치료에서 1일 동안 치료를 받고 온 것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을 때 그날 치료를 받고 온 것도 별로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8명-9명의 그룹으로 구성되어있는 환자들로 그룹 치료를 맡은 사회 복지사 선생님이 묻는 말에도 O군은 대답이 고착 잘 모르겠습니다. 별일 없습니다. 생각이 잘 안납니다가 고작이었다. 아침 10에 시작해서 차 모임으로 50분 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 기술 훈련 시간에는 서로 지난 주일에 있었던 이야기를 물어보고 설명을 하고 그 다음에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에서 3시까지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음악을 듣거나 소집단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하면서 느낀 소감을 서로 이야기하고 오후 2시 30분 정도가 되면 끝 모임으로 그날 모임을 마치는 내용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었다. O군은 그룹 구성원 안에서도 말이 없고 그냥 듣고 참가만 하고 있었다. 오후 3시에 그룹 치료가 끝나면 곧장 치료자에게 1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와서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분석 치료 상담을 진행해 왔는데 O군은 그날 병원의 그룹 치료에서 있었던 일도 제대로 기억하거나 말로써 표현하지를 못했다. 말을 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과정을 6개월 정도 거치면서 O군은 제발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점차로 그날 있었던 병원 치료 그룹의 구성원들의 이름들과 그 사람들의 인상을 기술할 수 있게 되어갔고 그날에 있었던 프로그램과 그날 본 영화 등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어갔다. 그룹 치료를 받기 시작한지 5개월쯤 되어서 O군은 병원 프로그램에 1주일에 4일간 참가하겠다고 했다. 2일을 더 늘인 것이었다. 치료자가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냥 사회 복지사 선생님이 치료 시간을 늘리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고 대답을 했다. 2일 동안 늘어난 프로그램의 내용을 물어보았더니 요리를 하는 시간도 있고 야외에 영화를 보러 가거나 등산을 함께 가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야외에 등산이나 시내에 영화를 보러 갈 때 보조 인턴이나 보조 간호원들이 몇 명 따라가서 상호관계를 한 이야기를 기술해 보라고 했을 때 조금씩 그날 있었던 일이나 이야기들을 기술하는 능력이 향상 되어갔다. 그러나 1주일에 4일을 병원의 그룹 상담 프로그램에 참가한 2개월 후에 O군은 별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병원의 그룹 치료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말았다. 실제로 그룹 참가에서 아무 말도 없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O군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냥 야외로 바람을 쏘이거나 구성원들과 얼굴을 보며 같이 참가하는 것 밖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치료가 6개월 정도 진행되어 O군이 상당히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때 O군이 자신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한 인터넷에 올린 글들을 모아놓은 자신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라고 비밀 번호를 적어주었다. 그 홈페이지에 실려있는 글들은 O군이 홈페이지에서 글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이 공개적으로 보는 곳에 올려진 글들이었다. 그 글의 내용은 O군이 병원에 입원하기 1년 전에 자신의 마음이 일부를 읽을 수 있었다. O군이 자기 표현이 부족해서 스스로 그 내용들을 상세하게 설명을 할 수 없었으나 그 내용들은 기억을 하고 있어서 치료 과정에서 그 내용들을 한 개씩 끄집어내어 다룰 수가 있었다. 그가 올린 글의 일부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생략--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내가 군대간 사이에 저의 어머니가 내방에 들어왔습니다.내 방에 들어와서  방을 뒤볐습니다. 그리고 쓸만한 물건을 몇개 챙겨서 자기가 하고 나머지는  갖다 버렸습니다.제대하고 집에 오니 하늘이 노랗고 눈앞이 깜깜하더군요.내방에 오니 침대만 있고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 겁니다.책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잠만 자라는 소린줄 알고 잠만 잤습니다.군대가기 전에 돈도 60만원인가 모아 놨었는데 한 푼도 없더군요.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내 방과 내 책상과 나만의 공간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제대하고 집에 오니 아무것도 안남아 있는 것입니다.그것뿐만 아니라  물건을 전부다 버려 버렸습니다.아마 쓰레기를 버리기 싫어서 방에 재놓은줄 알았던 모양입니다.나한텐 모두 소중한 물건들이었습니다.엄마 방에 들어가 보니 내방에 있던 물건들이 몇개씩 보이더군요.내가 군대간 사이에 쌥친 다음에  쓰고 있더군요.나는 나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겠다 죽으라는 뜻인가라고도 생각해 봤습니다.거짓말 아니고 연필 한 자루 종이 한 장 남아있지 않고 침대하나 만 딸랑 있는 방에서  하란 말입니까?부모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에 휩싸여 있는데 아버지가  책한자 안들여다 보느냐고 호통을 치더군요.아니 책이 있어야 보지 침대만 딸랑있는데 무슨 책을 본단 말입니까?책을 한 권이라도 사주고 그런 말을 하면 몰라도 대가리를  버리고 싶었습니다.부모가  그런 만행을 저질렀는가 생각을 해보니 내가 너무 착했습니다.군대 가기 전에도 부모는  물로 봤습니다.항상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너무 말을  들으니까 나를 소유물로 보더군요. 가지고 노는 장난감 인형으로 보더란 말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지만 나는 부모라는 이유하나만으로 부모가 어떤 만행을 저질러도 밟혀도 꿈틀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나한테 그런 만행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내 동생은 부모말 항상 안들었습니다.말은 항상 안듣고 부모한테 반항만 하는데 내동생한텐 잘해주는 겁니다.사달라는 것도  사주고 이것저것 내동생한텐 수백만원어치를 사주길래 나도 뭐좀 사달라고 해봤다만 거절하더군요.한번씩 반항도 하고 부모한테 대들어야  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만행을 줄였을 건데 말입니다. 무조건 시키는대로만 하니까 마음대로 인형 갖고 놀듯 옷을 입혔다가 벗겼다가 하고 자기 갖고 놀고 싶은 대로 갖고 노는 겁니다. 인간의 탈을  짐승들한테 천륜을 저버린 만행을 매일같이 당하다가 군대에 갔다왔더니 내방이 통째로 없어진 겁니다.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이것저것해야지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할수 없었습니다. 침대가 남아있었으니까 잠만 잤습니다.그 모습을 보고 부모가 엄청 화를 내더군요.부모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다가 살인계획을 세웠습니다.엄마아빠를 아주 고통스럽게 죽이고 대가를 치르게  다음에 내 동생은 살려주고 아파트에 불지르고 나 혼자 살아남는다 그런 계획입니다. 물론 계획을 실행하진 않았습니다. 실행에 옮겼다면 지금 이글을 못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먹으로 내리쳤습니다. 부모도 나를 인간취급 안하고 호적에서 파느니 매일같이 지랄을 하더군요. 아무것도 안하고 집안에만 처박혀 있다는 겁니다.누구 때문에 그런 건데 말입니다 단한 번이라도  그런 거냐고 물어보면서 대화를 시도했다면 뭔가 풀렸을 수도 있습니다---생략

위의 글의 내용을 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과 O군과의 관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가 O군가 동생을 편애한 것과 아버지가 O군에게 학대, 처벌한 것 등이 O군의 마음 속에 응어리로 남아서 분노와 적대감정으로 쌓여있음을 알 수 있었다. O군에게 어디에서 그러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물었더니 신문이나 인터넷의 글에서 실린 사건들을 읽고 그러한 무서운 생각을 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물어보았더니 군에서 제대한 직후부터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약 6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도 병원에 입원을 했고 지금은 심리치료를 받고 있어서 그 문제를 다룰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대로 억압되어 방치되어 세월이 약 15년 정도 경과되었더라면 실제로 살인 사건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유사한 사건이 바로 부모님을 살해하고 불을 지른 박한상 사건이나 부모님의 토막 살해한 명문대학 학생이던 이은석군 사건이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 대한 적대감, 증오심이 누적되어 폭발한 사람들로써 그 잠재 기간이 약 15년-18년 정도의 잠복기를 거친 사람들이었다. 부모님을 살해한 것이 잘 했다는 말을 물론 아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인간으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물건으로 취급해서 박해, 학대를 하면 그것이 누적되어 어느 한계선을 넘어서면 폭발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치료자는 O군에게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있었던 기억들을 한 개씩 복원해서 이야기를 하게만들어 나갔다. O군은 비교적 상세하게 자신의 기억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야기도 점점 재미있게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O군이 군대 제대 후에 복학해서 99년도에 졸업을 하고 한 학기 남은 과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수학 한 과목에 기말 시험을 치지 않아서 점수가 나오지 않게 된 것이었다. 자신이 긴장해서 시험 일자를 잘못 알고 시험 시간을 놓친 것이었다. 담당 교수님에게 사정을 이야기 해서 사유서를 써가지고 오면 재 시험이나 레포트로 대체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나 O군은 사유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학과 조교에서 물어보았으나 해답을 얻지 못하고 학점을 얻지 못해서 졸업을 하지 못하고 한 학기를 더 다니게 된 것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부모님에게 소상하게 이야기를 했더라면 한 학기를 더 공부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4년째 대학에 편입하기 위해서 편입 학원에 수강 신청을 냈고 졸업이 한 한기 남아있어도 괜찮겠느냐는 물음에 학원 원장은 합격하면 휴학계를 내고 졸업을 하면 된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xx 대학교 법대 경주 분교 편입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졸업 증명서가 없어 졸업이 취소 되면서 문제가 더 크진 것이었다. 이후에 대학 편입은 포기하고 약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그것도 포기했다고 했다. 그 과정을 분석해 보았더니 부모님이 제대로 용돈이나 책값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문제는 O군이 부모님에게 상세하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 부모님은 사정을 몰랐고 또 부모님의 눈치만 보고 알아서 돈을 주겠거니 생각했지만 부모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니 분노 때문에 공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저녁에 아버지가 늦게까지 TV를 켜 놓고 보는 바람에 공부에 집중이 안되어 아버지에게 TV를 아버지 방에 가서 보라고 요청을 하지 못하고 책을 집어 던지거나 유리창을 손으로 깨서 손에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는 자기 방에 TV가 있는대도 불구하고 거실 TV를 보고 있는 것을 자신의 공부를 의도적으로 방해를 하는 것으로 본 것이었다. O군이 학원 비용과 책값은 정확하게 요구를 해야 하는데 부모님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 미안해서 학원 비용만 달라고 해서 책값을 따로 받지 못해서 책을 구입할 돈이 없어서 학원 등록 창구에 있는 아가씨에게 외상으로 책을 달라고 했다가 망신을 당했던 이야기, 점심 값이 없어 아예 점심을 굶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분노했다. 자신의 공부에 무신경인 부모님에 대한 화풀이로 공부를 하지 않고 3년 동안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O군의 행동에 분개해서 호적 파가지고 가라, 짐을 싸가지고 집을 나가라 라고 몇 번이나 자신을 처벌했다고 했다.

아버지와의 갈등은 증폭되어갔다. 그는 아예 두문불출하고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했다. 한번은 아버지가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짐을 싸가지고 집을 나가서 혼자 살아라 라고 하며 나가라고 했다. O군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또 한 번은 O군이 밥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가 보시더니 어떻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 밥이 아깝다 라는 말에 분개해서 O군이 아버지에게 젓가락을 던졌는데 그 젓가락이 아버지의 팔에 맞아 피가 조금 흘러 내렸고 아버지는 분개해서 어머니에게 경찰에 연락해라, 아들이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패륜아를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경찰에 전화를 걸어라 라고 했으나 어머니의 만류로 진정되었다. 어머니도 O군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아버지 한데로 가서 아버지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고 했다. O군 자신의 마음 속에 받은 상처는 어머니가 위로나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O군은 자신이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고 동생과 편애를 당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복수를 결심한 것이었다고 실토를 했다.

 

이론적 근거

O군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의 대화의 부족으로 자신의 욕구나 소망을 부모님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채널에 결함이 있었다. 자기 표현이 없고 눈치만 보고 상대의 비위만 맞추면서 살아온 것이었다. 이것이 초, 중, 고등학교 대학 시절에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고 아예 친구를 만들려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학교 생활은 전해진 스케줄에 따라가면 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서 그런대로 잘 넘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졸업 후에 사회 생활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직업을 선택하고 동료들과 어울려야 하고 상사나 선배나 후배와 관계 등이 중요하게 자리잡게 되면서 O군의 문제는 서서히 표면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이제 어른이되어서 독립해서 부모님의 곁을 떠나야 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들의 과업이다. 직장을 잡고 배우자를 선택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사회인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O군이 이 과정에서 장애물을 만난 것이었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대인관계에 부딪친 것이었다. 학원에서 동료들과의 관계도 되지 않았고 외톨이가 되었고 또 정보에도 어두웠다. 이것은 동료들과 관계가 잘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그는 2년마다 한 번씩 있는 9급 교육 공무원 시험을 불과 2달 앞두고 공부를 했다고 했다. 그 다음에 9급 행정직에 도전을 하다가 그만 포기했다. 이후에 인터넷에서 xx 백화점에 주차장 경비원 모집을 보고 응시해서 2달 간 일을 하다가 포기했다고 했다. 이유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안 되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자동차를 지정된 자리에 주차 시키지 못하고 봉고차나 지프차를 지정된 장소에 주차 시키지 않아서 동료들과 손님들의 비난을 받고 어눌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그만 두었다고 했다. 이후에 그는 더 이상 직장을 찾지 않고 전자 오락으로 3년을 소일하다가 결국 아파트 앞 동의 중년 부인과 딸이 자신을 쳐다 본다는 망상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일차적으로 대인관계가 되지 않았다. 자기 표현이 되지 않았다. 말이 없어서 자기 표현을 하지 않으면서 가족들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어서 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이유는 말을 시켜도 대답을 하지 않으니 민망하게 되고 아예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지 않으니 그는 있었던 일을 회상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었다. 기억하려고 기억을 회상 하려고 시도를 하지 않아서 과거의 기억이 거의 없고 과거 회상이 잘 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경험한 것이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경험된 기억은 그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으나 사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연결되지 않고 분열되어 있는 것이다. 즉 자아분열이 된 것이었다. 또 상처 기억들은 기억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기억의 연결에서 끊어지게 된다. 잊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O군에게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게 하고 지난 일들을 회상하게 해서 기억을 회복 시키고 이야기를 연결하게 하기로 했다. 그래야 경험들이 되살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경험을 저장해서 이것으로 사회생활을 해 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하려고 모험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경험은 머리 속에 입력이 되고 그것이 삶에서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때 유용하게 사용되는 바탕이 된다는 것을 우리가 잘 모르고 있다. 우리는 과거가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러나 머리 속에 저장된 경험은 모두 과거의 일들이 아닌가? 과거를 잊어버리려고 하는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활용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끊임없이 되풀이 하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일을 시도하거나 사업을 할 때 우리는 과거의 경험으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나 전문가의 말들 듣거나 책을 보거나 해서 얻는 것이 모두 머리 속에 쌓여지는 경험들이 아닌가? 이것이 죽어버리고 연결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환자들이 아닌가?

이렇게 약 9개월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O군은 이야기가 많아지고 자신의 과거 회상이 회복되어가기 시작했다. O군은 조금씩 일상생활의 리듬이 규칙적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과거에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잠을 자거나 TV만 보거나 아예 아무 것도 하지를 못했다. 낮에 잠을 많이 자니까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밤 중에 한번 깨면 잠이 잘 들지 않아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수면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몇 개월 동안 효과가 없게 되자 아예 정신과 약물 자체를 부정해버리고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처방전을 받아 오지만 약국에서 약을 타지 않았다. 약물을 아예 끊어버린 것이었다. 치료자는 정신분열증은 약물 복용을 병행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강제로 먹일 수가 없었다. O군은 약을 먹지 않았고 그 후에 치료가 시작 된지 4개월 정도 되었을 때 수면은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밤에 잠을 자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게 되었다. 심리치료의 효과를 부모가 인정했다. 치료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그는 집에 틀어박혀 소일하지 않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는 아침 10시 쯤이면 시내에 뻐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xx 서점에 들여서 서점에서 마련한 공부하는 방에서 책을 보거나 그 옆에 있는 다른 서점에 들어가서 이것 저것 잡지나 흥미 있는 기사들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치료 9개월 쯤에 그는 시내에 극장에 가서 자주 영화를 보고 그 내용을 치료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갔다.

정신병원에 1주일에 4일 그룹 치료 프로그램을 그만 두었을 때 O군의 어머니가 O군의 용돈을 매달 20만원씩 주는 것을 10만원으로 삭감한 것이 분석 치료 시간에 드러났다. O군은 어머니에게 20만원으로 회복시켜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가지고 왔다. 실제로 병원 프로그램에 참가한 비용과 참가하지 않는 비용에는 차이가 없었다. 병원에서 야외로 나가는 비용은 치료 비용에 포함되어있었고 간식이나 그룹 참가 비용은 치료 비용에서 부담했기 때문에 병원까지 가는 교통비, 점심값만 차이가 있었다. 어머니는 O군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비용을 절반으로 삭감하면서 남은 돈은 저축을 하라고 했다고 분개했다. 치료자가 어머니에게 전화로 이야기를 해서 O군이 돈을 낭비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 있으니 돈은 20만원으로 회복 시켜달라고 했고 어머니는 O군의 용돈을 다시 20만원으로 되돌려주었다.

치료 9개월 쯤에 O군은 최근에 인기 있는 영화인 괴물를 보고 와서 치료자에게 35분 동안 영화 이야기를 해서 치료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조금씩 O군의 이야기 내용이 길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제 자신의 과거 이야기도 술술 잘 풀려 나왔다. O군이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를 이야기해 보라고 했더니 초등학교 시절에 본 슈퍼맨 영화 내용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약 20분 동안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나갔다. 치료자도 그 당시에 가족들과 슈퍼맨 영화를 보았으나 O군 만큼 기억을 잘 하고 있지 못했다. O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때의 장면들이 하나씩 기억에 떠올라와서 O군의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고 O군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

 

문제 해결 과정

O군은 고등학교 이후부터 최근까지 동생과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지내왔다고 했다말을 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려서 서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이번 추석 명절에 동생이 내려왔을 때 동생과 몇 마디 이야기를 몇 회 정도 나눈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설날 때는 형제 사이에 한 마디도 서로 주고 받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동생이 말을 하자 자신도 대답을 했고 컴퓨터를 어떤 것을 살 것이냐는 동생의 물음에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고 했다. 동생이 서울에 직장으로 올라간다고 했을 때 잘 가! 라고 인사를 했다고 했다. 서로 상세하게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형제 사이에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는 것은 O군에게 크다란 진전이었다. 부모님도 좋아했다. O군의 행동이 많이 좋아졌다고 기뻐했다. 명절날에는 동생과 아버지와 O군이 xx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인사를 갔었고 명절날 다음 날에는 온 가족이 모처럼 아시아 태평양 국가 원수 초대기에 같이 모여 회담을 한 누리마루와 기장의 횟집에 드라이버를 가서 같이 식사를 하고 왔다고 했다. O군의 회상으로는 그가 초, 중 시절 이후에는 거의 식구들이 같이 회식을 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동생이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O군과 어머니와 동생이 같이 엄마의 차를 타고 점심 회식에 갔고 아버지는 모처럼 몇 년 만에 밤 낚시를 다녀와서 고기를 많이 잡아와서 경비실에도 주고 매운탕을 끊어 먹였다고 했다.

치료가 1년 쯤에 가까워지면서 O군은 미래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대인관계가 많은 직업은 피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컴퓨터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동생이 13년 전에 버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고 나서 버린 컴퓨터를 13년 동안에 사용해 오면서 O군이 몇번 업 그레이드를 시켜 그런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고물이 된 컴퓨터는 기능이 전자 오락 게임 뿐이어서 새로 사기로 했다. 어머니가 새 컴퓨터를 사주려고 했으나 사고 싶지 않다고 해서 지금까지 미루어오던 참이었다. 어떤 컴퓨터를 사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제 자신이 부속품을 사서 조립을 하겠다고 했다. 컴퓨터 기술을 익히고 공부를 하겠다는 의도여서 치료자가 칭찬을 해 주었다. 언제 살 예정이냐고 물었을 때 이번 12 달에 살 예정이라고 했다. 지금 당상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펜티엄 4보다 한 단계 높은 부족품이 나오기 때문에 12쯤에 사겠다고 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치료를 시작한지 10개월 정도가 지나가면서 O군은 이제 아파트의 앞 동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중년 여성과 그의 20세 정도되는 딸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는 그런 곳에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되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대머리라고 욕을 하는 것이 없어졌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을 하기 직전에는 동네에서 아주머니들이 자신을 보고 대머리라는 욕을 하는 것을 여러 번 듣고 그 부인들을 응징하려고 마음을 먹기도 했다고 했다. 이제 식당에 가면 주문을 받는데 자신을 차별해서 일부러 주문을 받지 않거나 젊은 사람들만 이 음식점에 오기 때문에 자신을 꺼져라 라는 말이 귀에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 규칙적으로 외출을 하고 있으며 xx 서점과 xx 문고 등에 자주 들리는데 더 이상 직원들과 신경전이나 눈 싸움이 없다고 했다. 이제 가벼운 편안한 마음으로 그곳을 드나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O군 지금도 부모님에게 서로 눈을 맞추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말을 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수십 년 동안 가족들과 집안에서 말을 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에 익숙해져서 껄끄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외출했다가 집에 가면 초인종을 누르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면 서로 눈을 맞추지 않고 아무 말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라고 해도 싫다고 하며 거부를 했다. 그러나 치료자에게 치료 방문이나 치료를 끝내고 돌아갈 때는 한번도 빠짐없이 인사를 꼬박꼬박 잘 하고 있다.

또 한가지 변화가 뚜렷한 것은 최근 2달 사이에 O군이 과거에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글을 다른 사람과 공개된 곳에 2개를 올렸는데 한 개의 글에 4개-5개의 리플이 달려 있었다. 한 개는 영화 이야기였고 다른 한 개는 공군 전투기 추락 사고에 대한 글이었는데 상세하게 전술적인 내용을 쓴 글로써 그 글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다라 놓은 리플에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정신과 가서 치료를 받아보라는 글은 없었다. 한 명은 작년에 앞 동에서 중년 여성과 딸이 유혹을 한다는 글과 음식점에서 자신을 차별해서 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글과 규칙적으로 들리는 서점에서 점원들이 자신을 째려보고 욕을 한다는 내용 등의 글에서 리플을 달았던 사람으로 O군을 알아보고 작년에 그 글을 쓴 사람이 아닌가? 라며 물어보는 리플이 하나 있었다. O군의 생각이 점차로 건강하게 변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치료 1년 쯤에 O군과 치료자는 자신이 변화된 것들을 적어 보기로 했다.

1.       수면 패턴을 변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2.       여자 2명이 나타나는 빈도수의 감소

3.       여자 2명에 대해서 신경이 쓰이지 않음

4.       선생님 한데 인사 하는 것만날 때와 헤어질 때 인사를 한다

5.       일상 생활 패턴이 바로 돌아옴 일주일에 2-3회 바깥 생활 즉 외출을 함

6.       아침에 6시-7시에 일어난다. 기상 후에 신문을 보는 건강한 패턴으로 회복

7.       선생님과 대화 중에 말이 많아짐

8.       기억력이 좋아짐 영화를 보고 상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음

9.       저녁 식사 후에 이빨 닦기

10.   엄마와 이야기 빈도수 증가 말을 더듬는 것을 말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증거이다.

11.   낮 병원을 스스로 그만 둔 것--1주일에 2회에서 4번으로 증가했다가 중단함

12.   용돈이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증가된 것 나와 요구를 엄마가 수용해 줌

13.   지나가는 사람들 한데서 더 이상 신경이 안 쓰임

14.   최근에 괴물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35분 동안 이야기를 전개 했다.

15.   영화 이야기를 하고 1시간 40분 동안 이야기를 주고 받았음

16.   이야기가 논리적이고 자신감이 있고 편안하게 말을 한다-유창하게 말을 한다.

17.   이야기의 내용이 풍성하다-이야기의 내용이 많아졌다.

18.   여름에 늘 청바지를 입고 오다가 선생님의 권유로 흰 바지로 바꾸어 입고 다님

19.   , 중, 고, 대학 때 수학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선생님이 초등학교 때 서울에 여행 갔던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20.   과거에 대한 기억 회상이 좋아졌다. 지나간 기억들이 한 가지씩 되살아나고 있다.

21.   말을 할 때 자연스럽게 말을 잘 한다.

22.   치료자 선생님이 권유했던 것을 한 가지씩 실천하며 따라오고 있다.

 

치료 종결

O군은 앞으로도 몇 년 동안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본인도 어머니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과 말을 하지 않고 혼자서 마음 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고 살아온 것이 생활이 규칙적이고 단순한 초, 중, 고, 대학 생활은 무사히 지나갔으나 복잡한 사회생활에서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과 갈등을 풀어가면서 혼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혼자서 각종 상상은 결국 망상으로 환각으로 환청으로 연결된다는 정신분석의 대부인 프로이드의 말이 증명이 된 것이다. 치료는 끝없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하고 다른 사람과 연결을 시키고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고 실제로 이것이 얼마나 치료 효과가 있는가를 증명해 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