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32세의 남자 B군

증세: 자신의 이름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한다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에 성격장애를 읽고 나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음

진단명: 자아분열 성격 장애, 회피적 성격장애, 대인 공포증

치료 기간: 주 1회씩 2시간 분석치료 상담으로 1년 6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자신이 소원하던 대학에 입학하여 1학기를 잘 끝내고 2학기를 계속하고 있음

 

치료의 과정:

B군은 직장 생활이 어렵고 대인관계가 안 되어 치료자에게 연락이 와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치료 1년 동안의 상세한 과정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그는 치료 기간이 1년이 지나가면서 대인관계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해에는 자신이 소원하면 대학에 지망서를 제출하려고 하다가 응시 원서에 보호자의 이름과 주소가 들어가는 것을 싫어해서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지원서를 포기한 청년이었다. 아버지라는 말만 나와서 치를 떨거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1년 동안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적대 감정을 말로써 끊임없이 표현하게 한 결과 아버지의 싫어함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인천 지역에서 생산직을 하다가 강원도로 회사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No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할 수 없이 강원도까지 따라가서 직장을 다녔던 사람이었다. 그 후에 자신을 표현하는 대화의 기술이 많이 늘어났다. 그는 직장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올해로 들어오면서 인터넷에서 각 도와 시에서 운영하는 인력 관리 공단에서 학비와 생활 비용을 보조해주면서 1년 동안 대학 과정을 공부할 수 있고 졸업 후에는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응시해보고자 했다. 응시 원서에 보호자의 주소와 이름을 쓰게 되어있는 것에 불안해 하기는 했으나 치료자의 감정 지원과 용기를 얻어서 응시할 계획을 세우고 한가지씩 진척을 해 나가기로 했다. 자신은 xx 학과를 지원하고 싶어해서 먼저 지도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경쟁 비율과 앞으로 전망을 물어보기로 하고 치료 시간에 훈련을 했다. 다행히도 B군은 그 다음 주일에 지도 교수에게 전화로 시간 약속을 하고 방문 일자를 정해서 방문할 수 있었다. 경쟁 비율이 3대 1정도 높고 서울 인근 지역에서 자신이 원하는 학과가 그곳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걱정을 했으나 거뜬하게 합격을 했다.

제는 B군이 어떻게 자신이 근무하는 공장장에게 그만 둘 것이라는 말을 하느냐가 B군에게 크다란 문제로 떠 올랐다. 자신이 스스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회사에서 제법 6년 정도 일을 했고 또 강원도로 이사를 갈 때 사장님과 사모님이 특별이 월급도 올려주고 하숙집 비용도 지원해주고 있어서 미안해서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치료자의 도움으로 모의 대화 훈련을 했다. 공장장 님에게 자신이 1년 코스의 전문 대학에 합격해서 공부를 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게 했다. B군은 그런대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퇴근 후에 전화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면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했다. 퇴근 후에 저녁 때 집에서 전화로 하기로 하고 몇 번 연습을 해 보았다.

다음 주일에 B군이 치료실에 왔을 때 B군은 공장장에게 전화로 이야기를 했고 회사를 그만 두는 이유를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2월 중순 경에 그만 두겠다고 말을 했고 공장장은 2월 말까지 대체 인력을 구할 때까지 일을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제 회사를 그만 두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었으나 문제는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적립해 놓은 퇴직금이 문제였다. 퇴직금을 지급해 달라고 해야 하겠는데 그 말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B군은 군 제대 후에 몇 개의 회사를 다녔으나 그만두겠다는 말을 못해서 한번도 퇴직금을 받은 적이 없고 전부 포기했으며 반달이나 거의 한달 분 급료를 달라고 하지 못해서 포기해 왔다고 했다. 이번에도 퇴직금을 달라고 말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B군은 치료자의 도움으로 이후에 공장장에게 퇴직금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퇴직금도 몇 달 후에 받을 수 있었다. 비록 퇴직금이 자신의 기대보다는 적다고 불만을 표현했지만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말하기 훈련을 해서 논리적으로 조용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말하는 대화 기술의 그 만큼 향상되었다는 증거였다.

2월 말 경에 회사를 그만 두고 평생 소원이었던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기숙사에는 4명의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고 기숙사 입사 초반기에는 잘 해나갔으나 한달 이후에 우려하던 대로 문제가 생겼다. 친밀관계 문제가 다시 등장한 것이었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초반기에는 잘 해나가지만 친밀관계가 형성되는 시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공통점이다. 기숙사 입사 한달 만에 퇴사를 논의하게 되었다. 치료자는 B군의 입장을 지지해주었다. 기숙사에서 나와서 인천에서 지하철로 학교까지 출 퇴근을 하게 되었고 힘들었지만 이후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학교 입학 후에 동료들과의 관계도 초반기에는 잘 해 나갔다. 자신보다 나이가 10살 정도 어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K군과 친하게 되었다. 그이 외에도 몇몇 동료들이 접근해 왔으나 잘 사귀지 못했다. K군은 자신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마음이 잘 통한다고 했다. K군은 강의 시간에 잠만 자고 수학이나 계산 문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공부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다. K군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보라는 치료자의 권유대로 그는 점심 시간이나 등, 하교 때 K군과 같이 출, 퇴근 버스를 같이 타고 다니면서 K군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어내어 치료자에게 가지고 왔다. K군은 결혼한 누나가 그 학교에 가보라고 해서 어떤 학교인지도 모르고 학교에 들어왔다고 했다. 공부를 하면서 먹여주고 잠을 재워주고 20만원 정도의 용돈까지 준다고 해서 무조건 들어왔다는 K군의 말에서 B군은 실소를 했다. 아무 것도 준비가 안되고 공부할 의지가 없으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고 동기 의식이 없다고 K군을 비난하면서도 한편으로 동정을 했다. 그러나 K군은 학습 능력도 없었고 공부할 의지도 없어 2달 정도 다니다가 결석이 많아서 학교 지원금도 끊어졌고 학교에 자퇴하고 말았다. B군은 K군과 친밀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였는데 하면서 아쉬워했다.

B군은 자신의 xx 학과에 학생들이 60명이나 되고 두 개의 반으로 나누어 강의를 듣고 실습을 하고 있다며 소상하게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반 동료들이 자신보다 문제를 많이 가진 동료들이 있음을 알고 그대로 안심을 했다. 한 번은 카운셀러 선생님을 초대해서 학급 동료들이 자기 소개를 하는데 자신은 조리 있게 발표를 했으나 다른 몇몇 동료들은 발표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졌다. B군이 중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영어 교사였던 아버지가 어느날 나는 우리 xx가 세상에서 제일 인간관계가 안되는 사람인줄 알고 있었는데 우리 반에서 공부는 1등을 하는데 xx 보다 더 대인관계가 안되는 학생을 보았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 말이 마음 속에 가시로 박혀 있어서 늘 고통스러워해 왔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인간 관계가 제일 안 되는 사람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에 이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B군은 2월 말 경에 3개월 동안 어느 정신과 의사가 인지 행동 치료를 한다고 환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인터넷에서 보고 참여하였다가 한달 만에 다시 치료자에게 되돌아 왔다. 성격장애자인 자신의 문제는 인지 행동 치료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약 10명 정도 되는 환자 그룹에서 자신보다 엄청 문제가 심각한 동료들을 보고 와서 치료자에게 어떤 친구는 눈맞추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 등 특이한 사람들도 보았다고 자신의 문제는 그 사람들 한데 비하면 약과라고 안도해했다.

대학 생활은 그런 대로 별 문제없이 잘 해 나갔고 한 학기가 끝나고 여름 방학이 되었다. B군은 중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몇 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했고, 고등학교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학생이었으나 대인관계 문제로 인한 갈등 때문에 주의 집중이 어렵고 공부를 하려고 하면 잡념 때문에 공부가 잘 안되어서 그것이 환경적인 문제인가 궁금해했다. 고등학교 때는 방이 너무 좁아서 또 너무 사람이 많은 도서관에서는 공부가 안 된다고 불평을 했다. 원인을 분석해 달라고 졸랐다.

B군은 1년 과정의 대학에 다니면서 교수들의 강의가 부실하다고 불평을 많이 했다. 동료들의 수강 태도도 부실하고 학생들은 절반은 고등학교 수학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학생들이었고 대부분이 강의 시간에 잠을 하고 있고 교수는 강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거나 휴강을 하거나 실험 실습 때는 학생들이 많아서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 많고 실제 실험을 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자신은 그곳을 졸업하고 다시 공부를 계속해서 전문 대학에 그리고 4년째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구직으로 진출하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혼자서 연구만 하는 화학 실험실 같은 곳이면 좋겠다고 자신의 소망을 이야기하곤 했다.

 

이론적 근거

B군은 전형적인 자아분열 성격장애 환자였다. 그의 행동은 어떤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좋게 나오는 것을 기대하면서도 자신이 좋은 성적을 얻으면 다른 학생들에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사망이라는 생각 때문에 망설인다는 점이었다. 강의가 없어 휴강이거나 실습 시간에 대기를 하며 쉬는 시간에는 B군은 책을 펴 놓고 공부를 하거나 신문을 보거나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다른 학생들이 자신이 공부를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어쩔 줄 몰라서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옆에서 다른 학생들을 신문을 보거나 다른 책을 보는 학생들을 보고 부러워했다. 그는 그냥 지루하게 기다리면서도 시간이 아깝게 흘러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집에 있을 때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서도 전자 오락이나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해버리고 공부를 하려고 하면 잡념이 생기고 집중력이 분산되어 시간을 허비하고 나면 자신을 처벌하는 자아 학대가 많았다. 다시 말해서 한쪽의 마음은 공부를 하고 시간을 아껴쓰고 대인관계를 하고 공부를 많이 해서 학사, 석사, 박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과 다른 한 쪽에서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회피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숨기고 남이 보면 공부를 할 수가 없고 숨으려고 하는 자아 즉 두 개의 자아가 반대로 분열되어 이것이 갈등을 일으켜서 어떤 때는 이렇게 하다가 어떤 때는 정 반대로 하고 있음을 분석해 내자 B군은 이것을 인정했다. 자신의 학대, 처벌적인 행동 때문에 너무나 괴롭다고 했다.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시간을 낭비하고 나면 정작 자신을 학대하고 파괴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괴로워했다.

B군의 자아분열 성격은 B군의 성장 과정과 관계 있었다. 아버지의 학대, 처벌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한번도 칭찬을 받은 적이 없었다. 동료들과의 관계가 되지 않자 공부에만 열중하여 중학교 2학년 때 반에서 몇 등을 한 적도 있었다. 외갓집에 갔을 때 누나가 xx가 이번에 반에서 몇 등을 했다고 외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했을 때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어 xx는 공부를 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거짓말이다라고 했다. 이유는 B군은 공부를 하다가도 아버지가 오거나 가족들이 오면 공부를 안 하는 척 했다고 했다. 이유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심층에서는 아버지의 주의 관심은 바로 처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겠다는 무의식적인 방어였다. 그래도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공부가 잘되었고 집중력이 좋아서 공부하는데 즐거움으로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가면 혼자서 공부방에 틀어박혀서 공부를 하는 것이 취미였고 덕분에 성적이 쑥쑥 잘 올라갔다고 했다. 결정적 사건은 B군이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 어머니의 자살 사건이었다. 하루는 가족들이 집에 돌아왔는데 문이 안으로 잠겨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갔는데 어머니가 이상해 보였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약물을 복용한 것을 알고 아버지가 즉각 병원 응급실로 싣고 가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다가 결국 친척들이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해서 응급실에 싣고 갔으나 사망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음독을 하고 약 30시간이 지난 후에 병원에 데리고 갔다고 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에 아버지는 일체 그 사건의 내용을 비밀로 하라고 가족구성원들에게 언급을 했고 아무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어머니의 죽음에 아무도 슬퍼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B군 자신은 어머니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고 지금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가족들의 무관심을 테스트해 본 것이었다. 평소에 자신에 대한 가족들의 무시와 남편의 평가절하 아무도 신경을 써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우울함과 허무함 때문에 죽으면서도 가족들의 행동을 테스트 해 본 것이었다. 이 증거는 약물을 복용하고 즉각 죽지 않았고 가족들이 자신을 어떻게 처리하는가? 가족들의 행동을 관찰해 본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반응은 미온적이었고 30시간이 지나간 후에 병원에 입원시켜 결국 사망했다. 죽은 후에도 가족 구성원들은 아무도 어머니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냥 죽었는가 보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B군의 가족들이 감정이 억압되어 있었다. B군이 초등학교 시절에 누나가 6개월 정도 정신분열로 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 누나는 집을 나가서 따로 살고 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재혼을 해서 새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B군은 어머니가 자살 직후에 아버지가 B군의 방에 와서 약 3개월 동안 같이 지내는 바람에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방을 두고 왜 B군의 방에 와서 지냈는지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슬픔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런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부터 B군은 공부가 전혀 되지 않았고 이후에 몇 개월 만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고 이사간 곳에서 공부방이 너무 작아서 질식할 것 같아서 공부를 포기했다고 했다. 그는 그 이후에 공부다운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 xx 대학교 전자 공학과에 합격 했으나 공부를 할 수 없어서 중간 고사를 포기하고 그 이후에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한 학기 후에 집으로 성적표가 배달 될 무렵 가출해서 지금까지 아버지와는 관계를 끊어버리고 살고 있다고 했다.

B군의 결정적 문제는 어머니에 대한 애도 문제였다. B군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처벌, 학대 때문에 인간관계는 고통스럽고 괴로워서 자아 소멸을 막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정 관계를 철회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 감정 철회가 어머니의 애도 문제를 어렵게 한 것이었다. B군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해 왔음이 밝혀졌다. 그는 최면 치료사에게 찾아가서 최면으로 치료를 하려고 했으나 별 효과가 없어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종교적 믿음으로 치료는 한다는 유명인들도 찾아 다녀도 보고 심리학과 정신 의학 서적들도 탐독을 했다고 했다. 최면 치료자에게는 3번 정도 치료를 받았을 때 반쯤 최면 상태에서 B군 자신이 자신의 문제를 나는 엄마가 죽은 후부터 내 문제가 발생했고 나는 나를 영원이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고 했다. B군의 심층에는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과 애도 문제가 풀리지 않고 남아있어서 이 문제가 자아 학대, 자기 처벌로 이어진다는 치료자의 분석에 동의를 했다.

 

문제 해결 과정

B군은 어머니 문제를 다루기 싫어했다. 그 대신에 자신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매번 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공부에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치료자는 그 문제를 해결 하려면 어머니의 애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 시키려고 했다.

B군은 어느 날 학교에 적십자에서 헌혈차가 와서 헌혈을 하려고 지원했으나 혈액 검사 결과 간 기능 수치가 200을 넘어가니 병원에 검사를 해 보라는 충고를 받았다. 물론 혈액 헌혈은 거부 되었다. 건강한 사람은 간 기능 수치가 40정도 되는데 너무 수치가 높아서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으면서 치료를 약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검사 결과 확인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약도 먹지 않았다. 치료자가 치료 시간에 이유를 물어보니 죽고 싶다고 했다. 암이거나 불치병이면 더 좋겠다고 했다.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서 회복해야 한다고 수 차례 이야기를 했으나 결국 가지 않았다. 지금 당장 아무런 증세도 없는데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초능력으로 치료를 하면 된다는 엉뚱한 이야기만 했다. 치료자는 B군의 마음 속에 있는 분노, 적대 감정이 자아 학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다루자고 했으나 B군은 저항으로 다루기 싫어했다. 당장 신체적 이상 징후는 없으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이니 신경을 써야 하며 몸이 건강해야 일을 할 수 있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하다는 인식을 강조했으나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B군은 자신의 몸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두려워서 아예 문제를 피하려고 한다는 분석에 동의를 했으나 끝내 병원에 다시 가지 않았다.

한 학기가 끝나고 1달 가량의 여름 방학이 되었을 때 B군은 자신의 퇴직금으로 자신의 책상과 컴퓨터를 새로 구입했다. 머리에 쓰고 뇌파에 영향을 주어서 정신 집중을 한다는 기구도 샀다, 휴대폰으로 글자를 다운로드 받아서 휴강 시간에 공부를 하겠다고 휴대폰도 새로 바꾸었다. 1주일간 속독 훈련도 받아보았으나 별로 공부를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B군은 자신의 문제를 마음 속에서 억압된 분노, 적대감정 때문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전적으로 환경 때문으로 보고 환경을 바꾸려고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치료자는 B군이 지난 1년 6개월 간의 심리분석 치료에서 아버지 문제를 다루어왔고 그 문제가 어느 정도 풀리면서 자신의 이름이 노출되는 문제로 피해왔던 1년 과정의 대학에 합격하고 학교에 잘 다니고 있음을 상기 시키면서 공부에 집중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몇 가지 환경적인 문제 보다 어머니에 대한 애도 문제를 다루어야 함을 강조했다.

 

치료 종결

B군은 아직도 몇 년 동안 심리분석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어머니 문제가 해결되면서 B군의 자아분열이 통합되어져야 할 것이다. B군의 자아학대, 자기 처벌, 자해적 행동은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 분노, 아버지에 대한 적대 감정이 자신의 자아로 흘러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임을 알고 이 감정이 방출되고 분열된 자아 통합이 되어야 함을 알고 끈질기게 자신의 문제를 분석하고 알려고 하는 동기 의식이 앞으로 B군의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