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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40대 초반의 남자 W씨

증세: 밤에 누가 침입을 할까 두려워서 혼자서는 잠을 잘 수 없고 비행기를 탔을 때 비행기가 흔들리면 죽을까봐 두려워서 사색이 되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음

접촉: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치료를 받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내 왔고 전화로 치료 약속을 하게 되었음

진단: 공포증, 가벼운 우울증, 자아 장애(자기 주장이 없는 연약한 자아)

치료 기간: 치료자에서 6개월간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으로 그의 사무실 확장 때문에 치료를 계속하지 못하고 6개월을 쉬었다가 6개월 후에 다시 6개월간 치료 재 계약으로 1주일에 1회로 2시간씩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 결과: 다음의 분석 치료는 제 43 치료 회기(총 86시간의 치료)에서 분석되어진 그의 청년기의 고통스러웠던 문제점을 회상을 하면서 그의 상처의 아픔들을 치유해 나가는 것들을 기술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W씨는 최근에 부인으로부터 집에서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 없어졌다고 칭찬을 들었으며 부인으로부터 앞으로 치료를 더 많이 받아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기뻐했다.

 지난 달에 W씨는 부인에게 처음으로 독일제 승용차인 BMW를 선물했다고 자랑을 했다. 그 외제 승용차는 부인이 가지고 싶어 했던 차이고 이제 W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서 부인에게 꼭 선물을 하고 싶었다고 털어 놓았다. W씨가 처음에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상실 감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 W씨를 따뜻하게 격려해주고 W씨의 프로포즈를 흔쾌히 승낙을 받아준 사람으로 그리고 살아 오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에 옆에서 감정 지원을 해 준 사람으로 그가 지금의 성공을 거둔 것은 순전히 부인 덕분이라고 마음 속에서는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로 그는 부인에게 그 고마움을 표현을 하지 못했던 것을 이번에 그가 BMW 독일제 승용차를 사 줌으로써 그 보답을 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부인에게 외제 승용차를 사준 숨어 있는 진짜 이유를 털어 놓았다. 그가 부인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부인의 승낙을 얻어서 처음으로 부인의 가족들을 만났을 때 그는 조그만 포터 화물차를 몰고 상견례에 참석을 했다. 그 상견례에는 부인의 오빠 내외와 언니 내와가 참석을 했다. 그들은 W씨가 승용차를 몰고 온 것이 아니고 조그만 화물차를 몰고 온 것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으나 W씨는 마음 속으로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는 그 때의 그의 마음 속에서는 "동생을 데리고 가겠다는 사람이 변변한 승용차도 하나 없는 조그만 화물차를 몰고 왔느냐!"라는 비아양거림을 마음 속으로 느끼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들을 실제로 그렇게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시점에서 다들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데 화물차를 몰고 온 자신이 너무 초라했다고 느꼈다. 그 시점에서 그는 결혼을 허락한 부인에게 면목이 없었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부인은 부모님의 기일이 되면 빠지지 않고 오빠네 집을 찾아서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빼 먹은 적이 없는 부인을 대견하게 여겼다. 부인은 막내로써 오빠와 언니가 서울에서 유학을 가서 대학을 공부를 했는데도 끝까지 시골에서 여자가 지게를 지고 짐을 옮기는 일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W씨는 여러번 들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 곁에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집을 지켰다. 부모님이 돌아 가시고 나서 그녀는 서울에 오빠네 집으로 올라와서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W씨가 그 사업에서 해 외영업부에 취직을 하게 되면서 부인이 W씨의 직장 상사로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결혼해서 W씨가 그 행외 영업부가 확대되어 러시아와 유럽과 중국에 수출을 담당하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결혼 이후에 부인의 부모님의 기일이나 설과 추척 명절 때마다 빠지지 않고 부인은 오빠네 집을 방무을 했고 그 때마다 W씨가 부인의가족을 만나서 상호작용을 하는 것들을 보면서 부인의 가족들의 관계가 W씨의 집안에서 가족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부인의 가족구성원들을 자유롭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구애를 받지 않은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운 가족 관계에 호감이 갔다고 했다. 서로 만나면 대화가 풍부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긴장하지 않고 마음 대로 자기 주장으로 자신의 의사들을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W씨 자신의 가족들과 비교 되었다고 했다. W씨의 가족은 조용한 침묵의 가족들로 만나면 서로 대화가 없고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들을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하고 항상 긴장되고 즐거움이 없는 가족들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부인은 그녀가 부모님을 일찍 여윈 관계로 W씨의 부모님을 모시려고 자청을 했고 W씨는 캐나다에 이민을 간 누나가 10년 동안 W씨의 가족을 합가해서 먹여살리다가 이민을 자청해서 캐나다로 가고 가면서 W씨에게 절대로 부모님을 같이 모시고 살지 말아라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은 W씨의 부인이 부모님을 모시고 그녀의 친가 부모님에게 다 하지 못한 효도를 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라고 부인에게 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W씨의 부모님은 며느리를 효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은 그것은 그만큼 W씨의 부인이 집안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W씨가 이번에 BMW 외제 승용차를 사 준 또 하나의 숨은 이유는 W씨가 결혼 초에 남편으로써 경제적인 힘을 부인에게 의존해서 W씨가 사업에서 기반을 딲아서 제자리에 설 때까지 부인이 뒤에서 밀어준 고마움을 전달하는 것으로 이제 남편으로써 경제적으로 떳떳하다는 심리적인 과시를 부인과 어머니와 아버지 특히 누나들에게 과시를 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이제 누나와 부모님에게 그가 이제는 경제적으로 가장으로써 부족함이 없고 이제는 독립된 인간으로써 부모님 한데서 사춘기와 청년기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 취직에서 늘 부모님이 W씨를 무능력한 인간으로 무시하고 평가절하한 것에 대한 복수이고 그들에게 W씨가 이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임을 과시하고 자랑하기 위함이 복선으로 깔려 있다고 강조를 했다. 특히 처가댁 식구들에게 결혼을 허락받으려고 상견례로 만났을 때는 열등감을 깨끗하게 수리해서 씻어내는데 목적이 있었다고 이제는 자신 만만해 했다.

 그는 외제 자동차를 부인에게 선물하고 나서 이틀밤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유는 그 자신에 대한 양심의 목소리가 괴로웠다고 했다. "네가 감히 외제 자동차를 타고 다닐 만큼 성공을 했느냐? 이웃 사람들이 너를 보고 외제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고 비아냥거림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가? 돈도 없는 주제에 겉 모습만 찾는 뺀질이 같은 사람이 아닌가?" 등등의 양심을 찌르는 목소리에 너무나 괴로웠다고 했다. 이러한 목소리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알겠느냐?고 치료자가 물었을 때 그는 바로 부모님의 목소리이고 누나들의 목소리일 것이라고 분석을 했다. 그것은 틀림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발목 지뢰로 발목을 다치고나서 그는 가족 구성원들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따뜻한 위로나 감정 지원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을 했다. 부모님은 특히 누나의 가족과 합가를 해서 같이 살 때 W씨를 화장품 가계를 하는 매형 밑에서 기술을 배우지 않는다고 수 많은 닥달을 한 것과 매형 한데서 엄청난 압박을 받아서 구박을 받았던 시절을 회상하고 고통스러워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별볼일 없는 아들이 앞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를 염려 걱정을 했고 아들을 자식으로써 열등안 아이로 취급을 했다고 스스로 치료자와 치료 회기 시간에 털어 놓았고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별볼일 없는 무능한 사람으로 취굽을 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한다고 했다. 부모님은 W씨에게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는 사람이되어야 한다고 세뇌를 평생동안 해 왔고 지금도 W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공포증이 생긴 것을 잘 알고 있었다. W씨는 자신의 가족인 부인과 두 명의 자녀들은 뒤전이고 부모님을 모시는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고 정작 자신의 가족과 W씨 자신의 자아를 뒤전이고 부모님을 하늘처럼 떠 받들고 있는 효자 아들이라는 것이 그를 괴롭히고 있음을 점차고 확실하게 깨닫고 이제는 W씨 자신의 자아와 자신의 가족들을 보살히고 돌보는 것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서 실천을 해 나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W씨이 마음 속에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얼마나 강하게 각인이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 계기가 부인에게 자신의 돈으로 외제 승용차를 사 주고 나서도 양심의 고통 때문에 이틀 밤을 꼬박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또 한가지 W씨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며느리가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것에 어떤 반응을 하느냐를 관찰을 하고 나서 W씨는 깜짝 놀랬다고 털어 놓았다. 부모님에게 일부러 자랑을 하기 위해서 부인이 외제 BMW 승용차에 부모님을 태우고 외식을 하러 가면서도 부모님은 외제 승용차에 대해서 한마디도 칭찬을 하지 않았다. W씨는 부모님이 새로 시승을 하는 차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부모님은 자동차에 대해서 한마디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W씨가 어머니에게 "어머니 자동차가 어떠세요?"라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시컨둥 하게 "좋네"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고 아버지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들의 성공에 시샘을 한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그의 말에 수긍이 되었다. 아버지는 평생토록 아들에게 칭찬을 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 치료자가 아버지와 상담 치료 시간에 그 문제를 거론을 했을 때 아버지는 칭찬이 입밖에서 이상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가 살아온 삶에서 항상 아들이나 가족들의 칭찬을 빠져 있었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아들을 많이 칭찬을 하는데 정작 본인 앞에서는 칯찬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다음의 치료 회기에서 점점 W씨의 심층에 묻혀 있는 과거의 기억들이 연결되어 떠오르고 있다고 기뻐했다. 그가 가장 괴로웠던 시절은 사춘기와 청년기 시절이 대학 시절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는 대학 1학년 때 선배인 여학생을 만났고 그녀가 운동권으로 그에게 접근을 해서 W씨의 이상적인 여성상이 되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녀의 권유에 대학에서 운동원에 가입을 했고 대학 시절에는 운동권 서적을 탐독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학생 운동에 심취를 했고 대학 3학년 때는 학생 회장을 역임해서 학생 운동에 전념해서 공부를 뒤로했다고 틀어 놓았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와 아름다운 추억들을 회상을 했다.

 그는 그녀의 과제물을 복사해서 도와주고 그녀를 위해서 자료들을 수집해주고 그녀를 위해서 노트를 대필해 주고 그녀를 위하서 모든 것을 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 시점에서 그는 오직 그녀를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회상을 했다. 그와 그녀는 키스도 나누고 포옹도 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갔다. 그녀와 함께 기차를 타고 무작정 춘천으로 가다가 W씨의 학과 선배를 만나서 그 선배가 눈치를 채고 그들을 데리고 다시 서울로 데돌아 온 것에 대해서 아직도 그 선배가 눈치가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고 썹썹해 했다. 그 이후에 그녀는 점점 마음이 변해서 대학 3학년 때 그녀는 말없이 떠났고 3학년 때 학생 회장으로써 운동권 활동을 하고 나서 실망으로 대학 4학년이 되면서 동료들은 군대 복무로 떠나고 그 연인도 떠나고 W씨 혼자서 고통스러워할 때 기독교 학생들이 그에게 접근을 해서 하느님을 영접하라고 그에게 "하느님은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라는 말을 복창하라고 설득을 당하기도 했다고 기억을 회상을 했다. 그 시점에서 그의 얼굴 표정과 행동이 얼마나 실망에 차 있었기에 지나가는 기독교 학생들이 그에게 접근을 해서 하느님은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고 따라 하게 한 것을 기억을 했다.

 그가 사랑에 버림받고 괴로워할 때 본 한편의 영화가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털어 놓았다. 그 영화 속에서 연인한데 버림받은 그 젊은이는 말로써 연인한데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화가 나서 혼자서 삐져서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한 할머니가 보고 "떠나간 연인과 떠난 자동차는 붙잡지 않는 법!"이라고 한 말이 지금도 머리 속에서 맴돈다고 괴로워 했다. 그는 그 연인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  10년 동안 그녀를 포기하는데 소비를 했다고 괴로워했다.

 그녀가 떠나고 나서 B씨는 10년 동안 그 휴유증에 시달렸다고 고백을 했다. 그 이후에 그는 방황과 혼란의 10년을 보냈다고 했다. 그 시점에서 그는 학생 운동을 하느라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을 했고 특이 영어에 매달렸다. 그는 학교 시절부터 무역업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게 된 것이 그 시점에서 그의 삶에서 바탕이 되어 지금은 해외에서 특히 러시아에서 중국에서 영어로 수출을 하는 무역업에 종사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회상을 했다.

 그 후에 대기업에서 일차 시험을 합격을 했으나 빈번하게 이차 면접에서 낙방을 했다. 이유는 한쪽 다리 때문이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가  대기업에 취업을 하고 나서 그 연인을 찾아갔었던 것을 회고를 했다. 그 연인은 시골에서 서점을 경험하고 있었는데 곧 결혼을 한다고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 여인은 그녀의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어서 군인들을 싫어한다고 대학시절에 입버릇처럼 말해 왔었는데 그녀가 지금 결혼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공군 장교로써 비행기 파일럿이라고 귀뜸을  듣고 나서 그녀가 그렇게 싫어했떤 군인과 결혼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가 결혼을 한 사람이 운동권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그녀는 대학을 졸업 후에 운동권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을 하게 되었다고 그녀의 졸업후에 사정을 간단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는 그녀가 떠날 때 왜 그에게 한마디 인사도 없이 훌쩍 떠났느냐?고 물어 보고 싶은 말이 목에 까지 올라왔으나 끝내 그말을 하지는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가 그 시점에서 변변히 내세울 좋은 직장이 없었고 돈이 없었고 그리고 한쪽 다리의 장애 때문에 그녀가 떠나는 것을 붙잡을 자신이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있게 한 때 그녀를 사랑했고 앞으로또 그녀를 행복하게 할 자신이 있으니 그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렇게 말할 자신감이 없었던 청년기 시절의 고뇌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과거의 묻어두었던 아픔들이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고 있는 것에 기분이 쉬원해 진다고 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