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40세의 초등학교 교사 A 씨

증세: 동료 교사들과의 갈등 관계, 학급 학생들을 잘 컨트롤하기 어려움, 학부모와 갈등관계 등으로 치료자를 찾아왔음

진단명: 자아분열 성격장애, 회피적 성격장애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기로 1회에 2시간씩 분석 상담 치료를 10년 동안 받았고 지금은 1주일에 1회 2시간씩 학급 학생들의 개발 상담을 위한 슈퍼비전을 2년째 받고 있다.

치료 결과: 그는 치료자에게 10년동안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를 받았던 유일한 사람이었고 가정 성공한 치료 사례로 꼽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지난 1월달(2012, 1월)에 서울시 다음에 큰 도시인 P씨에서 유일하게 P시를 대표해써 교육부 장관 상을 받았고 그 부상으로 P시 교육청에서 보내주는 중국 연수(이름은 연수지만 여행)로 4박 5일을 다녀왔다. 그는 P 대학 교육대학원의 상담 심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상담교사 자격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치료자와 치료를 시작한 시점부터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으로 전체 학급 학생들을 상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으로 써서 최고 우수 논문으로 인정을 받았다. 지금은 그가 담임한 학생들의 전체 개별 학생들을 대상으로 치료자로부터 분석 치료에서 슈퍼비젼으로 바뀌어서 1주일에 1회씩 학생 개별 상담 슈퍼비젼으로 받고 있다.

 

치료의 과정

 A씨는 치료자 한데서 유일하게 가장 오랫동안 심리치료를 받아온 사람이고 또한 치료의 결과로 볼 때 가장 성공적인 치료 결과를 경험하게 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다. 초반기 그의 치료 과정을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그는 처음에 치료자인 나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날짜를 찾아 보았드니 2000년 4월 8일로 치료 계약을 하고 치료를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 그는 묻는 말에만 간단하게 말을 하는 단답형의 내담자였다. 심리치료에서 가장 힘든 어려운 내담자가 말을 잘 하지 않는 내담자이다. 치료자에게 말을 하기 싫어해서 저항으로 말을 잘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아니고 P씨는 그의 성격상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심리치료나 정신분석 치료는 말로써 자신의 생각, 느낌, 상상, 지각, 사고, 감각 등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치료이다. 고로 P씨처럼 원래 성격상으로 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은 말을 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1차적인 치료 목적이 된다.

 처음에 치료자를 찾아온 그의 핵심 문제는 학생들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을 체벌을 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자신이 담임한 학급 학생들을 컨트롤하는데 어려움을 호소를 했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마음대로 컨트롤하는 즉 학생들이 선생님을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동료 교사들과 갈등들을 가지고 있었다.교사로 근무를 시작한지 5년 정도 되었고 벌써 학교를 몇 번 옮겨다닌 후였다. 공립학교 교사들은 순환 근무제이기 때문에 한 학교에서 최하 3년에서 최고 5년이 지나면 자신의 희망하는 학교로 전근을 갈 수가 있다. 그는 순환 근무 연한이 되기도 전에 지원으로 학교를 옮겨다닌 것이었다.이유는 동료들과의 갈등 때문에 외톨이로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과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학부모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고 학급 학생들과의 갈등 때문에 학부모의 항의를 받고 이것을 적당하게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에 치료자에게 와서 했던 첫 마디가 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학교 교사로 적성이 맞지 않다고 생각이든다고 했다. 교사를 그만두게 되면 다른 일자리를 구상하고 있느냐?고 물어 보았을 때 그는 다른 직업을 생각해 보지 않았고 했다. 교사를 그만 두지 않는다면 차선 책으로 강원도 산골로 전근을 가서 그곳에서 교사 생활을 하는 것이 어떨까? 여러번 고려중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그 때 그에게 학교를 옮겨다닌다고 사람들과의 갈등 관계가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고 또 강원도 산골로 직장을 옮긴다고 해도 관계의 문제는 따라다닐 것이니 근본 문제인 대인관계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유를 했다.

 그렇게 해서 심리치료가 시작되었다. 초반기 치료 동안에 치료자가 그를 치료를 하면서 처음부터 그는 일반적인 성격장애가 아닌 심각한 성격장애로 그가 "자아분열 성격장애"라고 진단을 확실히 내릴 수가 있었다. 자아분열 성격장애는 정신분열증 다음가는 심각한 장애로써 대인관계를 할 생각이 아예 없는 회피적으로 생활 속으로 빠져들어서 혼자있는 것이 편하고 마음 속에서 관계를 하려고 시도할 생각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유사한 장애로써 회피적 성격장애가 있다. 그리고 대인공포증이 있다. 대인공포증은 불안장애애 속하는 것으로 주로 청소년들의 젊은 층에서 많이 진단이 되고 대인공포증이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장애로 굳어지게 되면 회피적 성격장애가 된다. 회피적 성격장애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시도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 고로 관계를 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관계가 잘 안되니까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회피적 성격장애자들이고 자아분열 성격장애는 아예 관계 자체를 피하는 사람으로 혼자 있으면 마음이 편해서 관계 자체를 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상상 속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으로 괴상한 특이한 상상으로 정신분열증으로 오인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분열증과는 다른 것은 현실 감각이 있어서 현실과 상상들을 구분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인공포증을 상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그리고 회피적 성격장애와 자아분열 성격장에 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그는 고등학교를 1등급으로 졸업을 하고 xxx 교육대학을 2등으로 졸업하고 P 시에 교사 발령을 받은 4사람 중에 한명이면서도 자신감이 전혀 없었다. 학교 시절의 공부를 잘했다는 자신감은 없었고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져있는 사람임을 치료 초반기에 그의 과거사를 알 게 되면서 그러한 자신의 좋은 장점을 자신감으로 살리지 못한 것을 분석해 나가면서 치료자는 그가 한번도 미래에 계획을 세워서 공부를 한 적이 없었고 오직 교사나 교수가 주는 과제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결딜 수가 없어서 하다고 보니 성적이 좋게 나오게 되었다고 하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치료자가 알고 놀라게 된 것은 그는 그의 머리 속에 상상이 없다고 했다. 치료자가 머리 속에 한 개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을 마음 속에 그려 보라고 했을 때 그는 머리 속에 아무리 장면을 떠 올리려고 해도 장면이 떠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 속에 이미지가 없다고 했다. 치료자가 "눈을 깜고 머리 속에서 어제 보았던 장면을 상상으로 떠 올려보라"고 여러 차례 시도를 해 보았으나 장면이 떠오르는 것 그 자체가 아예없다고 했다. 그의 마음 속에는 그냥 계속해서 흘러가는 생각들, 사고들만 영화 스크린처럼 흘러가고 그것을 스톱시키거나 막을 수가 없다고 했다. 끝없이 생각들이 자신도 모르게 그냥 머리 속을 흘러가는 영화 스크린의 자막처럼 그가 그것을 스톱시키거나 바꿀 수가 없이 그냥 흘러갈 뿐이라고 하소연 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한마디로 부모님과 상호 작용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이 같이 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었고 같이 식사를 해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는 엄마와 따뜻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은 삶에 지쳐서 하루하루 맞벌이로 생계를 연명해가고 자주 쌀이 떨어져서 어머니가 나물이나 쑥을 캐면서 혼자 눈물을 짓는 것을 여러번 목격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감정이 거의 없었다. 분노, 적대 감정을 말로써 거의 표현을 할 수 없었다. 화를 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 모욕을 받아도 반응을 하지 못했다. 직장에서 상사들, 즉 교장, 교감, 교무 선생님으로부터 어떤 때는 모욕적인 말을 수차례들었으나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는 늘 우울하고 불안하고 왜 사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그냥 일을 해야 하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라고 했다.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분노, 노여움을 느끼지 못하고 늘 얼굴 표정이 굳어있고 화석처럼 변해있다고 푸념을 했다.

 학교 시절에 공부는 잘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담임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반쯤 공포속에 살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공부를 잘해서 성적은 좋았다. 한번은 중학교 때 학급 반장이 자신을 미행을 해서 화장실에 따라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왜 그렇게 미행을 했는지 나중에 알고 쓴 웃음을 지었다고 했다. 반장은 A군이 성적이 이상하게 좋으니까 혹시 컨닝을 하지 않았나? 해서 그를 화장실까지 미행을 하고 나서 xxx 군이 컨닝을 하는 것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나서 그를 의심해서 미행을 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1등-2등을 했는데 1등을 하니 담임 선생님에게 주의 집중을 받는 것 같아서 부담감으로 일부러 1등을 피하고 2등에서 3등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공부를 어떤 목표나 목적 의식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고 그냥 과제물, 숙제를 해가야 했기 때문에 의무감으로 하다 보니까 성적이 올라간 것이라고 덤덤 하게 말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후반기에 그는 의과대학이나 약학 대학에 가려고 했으나 가정 사정이 좋지 않아서 교육대학으로 진로를 바꾸고 나서부터는 그의 아예 공부를 손에서 놓아 버렸다고 했다. 교육대학에 갈 것이라는 공부를 안해도 된다는 실망, 분노 때문이었다고 했다. 마지막 정리 기간인 수능 시험 때까지 약 2달 가량은 아예 책을 보지 않고 포기를 했다고 했다. 교육 대학은 충분히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고 했다. 수능 시험 날에 얼마나 긴장을 했든지 시험 도움에 사정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오줌을 싼 것이 아니고 정액을 사정할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었다.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회상을 해 보라고 했을 때 장면의 연상은 아예 상상의 장면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고 어린 시절도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간혹 몇가지 그냥 머리 속에 스쳐가는 기억들이 스크린의 자막처럼 지나가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특이하게 그는 최근에 그의 어린 시절에 P시에 있는 용두산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그 자신이 깜짝 놀랬다고 했다. 3살-5살 정도의 나이에 어머니와 함께 손을 잡고 찍은 옛날 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그 사진에서 자신을 모습을 보고 감정의 표정이 없는 깜짝 놀래서 긴장된 얼굴 표정으로 서 있는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그가 어린 시절에 얼마나 놀란 긴장 상태에서 지금까지 살아 왔는지를 짐작이 간다고 쓸쓸해 했다.

 그의 가족들은 부모님과 여동생이 한명 그리고 남동생이 한명이 있다고 했다. 그의 여동생은 그가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면서 그의 가족들을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그의 여동생이 지방 명문대학인 P 대학 영문과에 2학년을 마치고 3학 때 초기에 휴학으로 9년째 두문불출하고 환청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냥 그렇게 두지 말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라고 권유를 해고 그는 치료자의 권유를 받아들여서 여동생을 xxx 정신병원에 3개월 입원 시킨 후에 약물로 환청이 사라지면서 심리치료를 1년 동안 받았으나 실패로 끝이났다.그녀는 아예 심리치료를 받으려는 의지가 없었고 오빠가 자신의 치료 비용과 자신의 돌봄의 헌신에 고마움으로 치료자에게 나온다고 했다. 약물과 심리치료를 병행을 했으나 치료에서 실패하고 수 없이 정신병원과 집을 드나들다가 10년 이상 대학생활에 복귀의 꿈을 버리고 정신분열증으로 구청 사회 복지과에서 매달 40만원의 지원을 받으면서 학교 자퇴서와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사회에 진출의 꿈을 버린 후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줄어들어서 지금은 부모님과 같이 생활을 하면서 한 사람의 어린애로 퇴행을 해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최근에 오빠인 A 씨로부터 그녀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여동생의 치료 과정을 상세하고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그의 여동생은 폐인으로 전략해 버렸고 그의 남동생 역시 30대를 넘어섰으나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집에 독립해서 나오지 못하고 삼촌이 운명하는 부동산 중개소에서 보조로써 생계는 유지해 가고 있었다.

 그는 치료 초반기에 치료자의 권유로 부모님에거 독립해서 집을 나오게 되어 지금까지 혼자서 잘 살고 있다. 그는 몇 년 전에 한 여교사와 결혼 직전에 갔다고 서서로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살겠다는 독신으로 방향을 굳혔다.

 

치료 결과

 그의 10년 동안의 이야기는 한권의 책으로 쓰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의 10년 동안 치료의 변화된 결과를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그는 몇 년 전에 23평정도 되는 한 개의 아파트를 구입해서 혼자서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에서 생활부장 직책을 3년동안 맡아서 하고 있다. 2012년 1월에  교사로써 최고의 영예의 상으로 인정해주는 교육부 장관 상을 받아서 P 시에서 대표로 한사람으로 그에게 수여되어져서 그의 능력을 인정을 받았다. 그에게 상이 주어진 것은 그가 교장, 교감에게 잘 보여서 그 사람들의 배려로 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오래 남아 있으면 한가지 특기를 길러야 한다는 치료자의 권유를 수용해서 그는 교사가 학생을 체벌이 없이 어떻게 지도를 할 것인가? 즉 학생들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이가?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대학원 상담 심리학과를 지원을 해서 5대 1의 입학 경쟁을 뚫고 입학을 했고 3년 뒤에 수석 졸업으로 그리고 그가 쓴 졸업 논문이 최고의 논문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그의 반 학생들을 모두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어서 그가 하나씩 실천을 해 나갔고 지금은 약 10년 정도의 노하우를 축적하게 되었다. 그는 교사 생활처음부터 승진을 해서 교감, 교장이 되겠다는 생각을 아예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살아남는 것이 그의 첫 목표였다. 그래서 그는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를 보는 것을 아예하지 않았고 자신의 주어진 영역 안에서 간섭이나 침투를 받지 않고 자신의 주어진 일을 확실하게 해 나가도록 하는 쪽으로 치료를 해 나갔고 그는 그의 영역을 지금도 잘 수행해서 나가고 있다. 학교 사회는 교감, 교장 그리고 나이 많은 원로 선생님들이 컴퓨터에 약해서 젊은 사람들에게 일을 떠 맡져서 업무에 시달리는 젊은 교사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A 교사에게는 그러한 과중한 부담을지지 않도록 했다. 그는 자신의 주어진 직책을 잘 수행해 나갔다.

 6학년 담임에다 6학년 부장 교사 그리고 학생들의 회장, 부회장 학급 반장, 부 반장 등의 학생회의 엄무를 맡아서 잘 수행을 했고 몇 년 전부터 모두가 피하는 학생 생활 부장을 스스로 맡아서 상담 관계의 전공을 살려서 그의 학생 상담 프로그램을 활용하도록 했다. 최근에 학교 폭력 그리고 왕따 등의 문제로 학교에서 생활 부장 업무를 기피하는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학생 생활 부장의 업무를 맡아서 능숙하게 처리를 하게 되었다. 그는 교육청에 예산 지원을 요청해서 학교 상담실을 스스로 계획해서 만들어서 그 상담실이 잘 만들어졌다고 다른 주변의 여러 학교에서 담장자들이 견학을 오게 될 정도가 되었다고 기뻐했고 동료들의 칭찬을 받았다. 거기에서 학교 폭력 때문에 교육청에 학교 지킴이 보안관 지원을 요청해서 그러한 프로그램으로 지원을 교육청에서 받은 액수가 약 1억 5천만원 이상의 예산 지원을 따냈다.

 그가 학급 학생들을 위해서 개별 상담 프로그램을 시행을 한지가 벌써 약 10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는 처음에 몇 년 동안에 그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을 겪었다. 동료들의 시샘은 쓸데없이 에너지를 다른 곳에 낭비한다는 많은 시선을 받았다.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너도 나도 할 것없이 모두가 과외학습으로 학원으로 특수 프로그램으로 뿔뿔히 흩어지게 되어 학생들을 오후에 따로 남겨서 상담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는 아침 자습시간에 그리고 점심 시간에 그의 시간을 할애해서 반 학생들의 상담을 계속해서 나갔다. 이웃 학급의 동료 교사들은 한결 같이 할 일이 없으면 쉬지 무엇하러 고생을 돈으로 사서 하느냐?라는 시선과 충고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치료자의 지원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해 나가면서 학급 어린이들의 반항, 도전들을 상담으로 수용해서 이해를 바탕으로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갈등을 수습을 하고 풀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6학년을 몇 년 동안 담임을 하면서 학생들이 사춘기에 진입을 하면서 반항적이고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문제들을 이해하고 풀어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는 동료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묵묵히 학급 전체 학생들의 상담 프로그램을 수행해 나가면서 학생들의 부모님을 개별적으로 학교에 불러서 자녀들의 문제 행동들을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고 그들의 자녀들의 문제 행동들을 함께 풀어 나가는 방법을 병행을 한 것은 물론이다. 어린 학생들의 문제는 부모님의 문제와 직결되어있음을 직감하게 되면서 부모님의 도움이 없이는 학생들의 행동들을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그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학부모를 직접 학교에 초대를 해서 담임을 방문하는 문제들은 초반기에 교장, 교감 선생님들과 갈등, 충동을 야기 했다. 학부모들의 치맛바람 때문에 학부모는 학교에 출입을 금지하는 정책 때문에 그는 그 문제를 교감, 교장 선생님들을 직면해서 풀어나가야 했다. 학부모가 담임을 방문을 하면서 돈 봉투나 음료수는 절대로 받지 않았고 그리고 학생들의 공부와 행동을 지도하는데는 부모님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학부모 사이에 좋은 평판이 나면서 그는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갈등 문제들을 두 개를 함께 풀어나가는 이중적인 해택을 받게 되었다. 그가 처음에 교사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들 중에 하나가 학부모들과의 관계 문제였다. 이제 그 문제는 학부모들로부터 인정과 칭찬으로 바뀌면서 그에게 오히려 학부모가 교사를 칭찬하고 지원하는 지원군이 된 것이었다. 그 문제가 처음부터 부드럽게 해결이 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를 방문해서 2시간 정도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 담임과 상담을 하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들이 많았다. 시간 낭비 혹은 아이들에의 과중한 과외 공부의 짊은 들어주라는 그의 요구에 반발을 했다. 그러나 그와 2시간 동안 상담을 한 이후에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소문이 학부형들 사이에 돌면서 그 문제는 오히려 옆 반에서 학생들이 "우리 반은 왜 상담을 해주지 않습니까?"라는 요구 그리고 내년에도 우리 자녀를 A 선생님에게 맡기고 싶다"는 부모님들의 입소문으로 바뀌면서 달라져가게 되었다.

 그는 그의 반 학생들의 평소 행동과 문제점들을 사전에 조사를 해서 철저하게 가정환경 조사서와 함께 분석을 해서 부모님이 오시면 그 학생의 양육 과정을 물어보고 이것을 바탕으로 그 학생의 행동을 부모님과 교사가 서로 도와주어서 그 학생을 올바로 지도하는데 있음을 부모님에게 인식을 시켰다. 치료자와 사전에 그 학생의 문제 행동과 가정 환경 등을 분석해서 사전 준비 작업을 해 두었기 때문에 그의 상담은 전문가로써의 지식으로 무장되어져서 학부모들을 설득시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학급 개별 상담 프로그램의 노하우가 누적되어가면서 그 문제의 어려움과 스트레스에서 점차로 안정감과 자신감이 쌓여 갈 무렵에 학교 폭력인 왕따 문제가 터지면서 전국적으로 학생들의 행동 지도 문제가 교육 현장에서 도마위에 오르게 되었다. 급기야 2012년에 국무총리가 지침을 내려서 모든 학교 교사들은 의무적으로 학급 학생들을 적어도 한 학기에 한번씩 학생과 학부모를 개별 상담을 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도록 하는 지침이 학교에 내려지게 된 것이었다. 학생 생활 지도 교사의 책임 하에서 학교에서 상담 교사 채용을 공고를 해서 학생들의 상담을 전담으로 하는 상담 교사를 모집하게 되었고 인터넷에 상담 교사 모집 공고를 내자 9명의 지원자가 몰려 왔었고 그 중에 정식 대학원 상담 과정을 끝내고 상담 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1명밖에 없어서 그 사람을 1년간 채용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와 함께 학교 보안관으로 학생들의 안전 지킴이를 그가 채용을 했다. A 교사는 그것을 이미 10년 전에 예측을 하고 지금 실행을 하고 있으니 최근에 모든 교사들이 그에게 주의 관심을 집중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교육 현장에서 그의 학생들의 생활 지도 문제의 해결책이 적중하게 된 것이 아닌가!

 그는 이러한 그의 공로로 교육부에서 P 시를 대표해서 교육부 장관상의 수상하게 되어 교사로써 지금까지의 노고를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학교장의 추천으로 그 상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가 상담 분야에 공로가 있는 사람을 추천하라는 공문을 보고 스스로 자신이 만들었던 그의 성과들을 파일로 만들어서 직접 교장 교감의 결재를 받아서 올린 결과로 받은 상이었다고 한층 더 보람있어 했다.

 그는 치료자의 권유로 그의 상상들을 이미지 화 하기 위해서 많은 여행을 했다. 금강산 관광을 7년 전에 다녀왔고 그리고 여름 방학 때는 미국 여행(로스엔젤스와 라스베가스 페키지 여행)을 개별적으로 갔다 왔고 대학원 재직 때 졸업 여행으로 동료들과 함께 베트남과 캄보디아 페키기 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 교육부 장관 상으로 주는 4박 5일 중국에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2012년에 교사 생활 15년에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스스로 자원해서 맡게 되었다. 수년 전에는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과 6학년 담임을 서로 하려고 경쟁을 했었는데 지금은 서로가 맡지 않으려고 회피를 하는 담임이 된 것이었다. 이제는 수학여행, 앨범 등에서 교사들에게 떨어지는 떡고물이 없고 학생들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심하게 반항적이고 충동들인 행동들 때문에 고학년 생활 지도에 골머리를 앓게 되면서 생긴 현상이 6학년 담임 기피증이고 1학년 담임은 학부모들의 촌지가 없어지면서 1학년 학생들의 생활 지도가 처벌의 금지로 인한 문제점으로 떠올라서 교사들의 기피하는 학반이 된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1학년을 신청을 했고 그 결과 그가 근무를 하는 작은 학교에서 출산 저하로 학생들이 줄어들면서 올해는 1학년이 두 학급으로 한 학급에 13명으로 남 학생이 9명 그리고 여학생이 4명으로 담임을 하게 되어 1학년의 기피했던 동료 교사들이 자신들이 피했던 1학년이 오히려 인원수의 감소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는 앞으로 50대 중반이 되면 학교 교사직을 그만 두고 심리치료 혹은 심리 상담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상담 심리학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치료사의 권유로 아동심리치료 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려 놓고 많은 부모들로부터 문의를 받고 있다. 그는 학교를 떠나면 퇴직금을 매달 받기 때문에 상담실의 문을 열어서 경제적인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학생들의 심리문제를 상담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있다. 그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고 싶은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그는 지금은 A씨와 치료자는 A씨 자신의 개인 분석 치료 보다는 그의 학급 어린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상담을 진행해나가고 그의 부모님들을 설득해서 자녀들의 행동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까? 라는 문제로 치료자로부터 슈퍼비전을 1주일에 1회씩 2시간으로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