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지방 명문대학을 갖 졸업한 24세의 여성 H씨

증세: 대인관계를 회피해서 친구 관계가 거의 없고 세상을 심하게 부정적으로 염세적으로 보고 있음

진단명: 회피적 성격장애, 대인공포증, 불안 장애(공포증)

연결: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던 남동생의 소개를 받아서 남동생이 누나를 직접 데리고 치료실에 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1회 치료 회기에 2시간으로 1주일에 2회씩 총 48 시간을 3개월 동안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음

치료 결과:  심리적 안정은 되찾고 부정적인 생각은 많이 바뀌었으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치료를 계속하지 못했음

 

치료의 과정

 H양은 지방 명문대학을 갖 졸업한 새내기 사회인으로 출발은 하였으나 심한 대인 공포증으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하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취직 시험 준비만 하고 있었다. 치료자의 대학 강의를 들었던 대학원 학생이었던 H양의 남동생이 어머니와 누나에게 권유를 해서 치료자의 치료실에 대학 4년을 졸업한 누나를 직접 데리고 올 정도로 외부 환경에 불안해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 정도가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동생이 치료자에게 보내온 누나에 대한 메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김종만 교수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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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7월 26일 목요일, 오후 16시 43분 33초 +0900
 
 
   
  <jongmankim@hanmail.net>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작년에 교수님의 심리학 개론을 수강했던 부경대 xx 학번 xxx 입니다. 당시에는 제 전공과도 다른 과목이고 재미있었지만 어렵기도 해서 자세히 공부를 못했습니다만 방학때 교수님 책을 다시 읽고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메일을 드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저희 누나 상담 치료가 혹시 가능한지 여쭙고 싶어서입니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교수님 책을 읽고나니 상담을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요.. 누나도 상담치료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저희 누나는 84년생으로 올해 8월에 xxx 대를 졸업합니다.


성격상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제일 큰 문제일듯 싶습니다. 대인 관계에 매우 약합니다. 제가 보기엔 약간 대인공포(기피)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는걸 굉장히 싫어하고 만약 집에 누군가 찾아오면 숨어버립니다.

심지어 중국집에 전화하는것조차 기피합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걸 꺼립니다.

2.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사소한 농담에도 깊이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고요..

3. 도전정신이라던지, 무언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기피를 합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4. 무언가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꼭 다른 사람(혹은 물건, 또는 동물)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역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메일로 다 설명드리기는 어렵고요.. 상담 치료를 받았으면 하는데, 이런 것도 치료가 될까요? 지금까지는 그냥저냥 살아왔지만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성격이 그렇다 보니 사회생활하는데 힘든점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치료 스케쥴을 잡아주실 수 있는지, 치료를 하게 되면 비용은 얼마나 될지 궁금합니다. 부디 이 메일 읽으시는대로 답장 보내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H양의 과거의 역사: H양은 어린 시절에서부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서 지냈다. 유치원 시절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기억은 별로 없었다. 그녀는 학교에 대해서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에 대해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고, 촌지 봉투를 가져오는 학생들에게만 주의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과 같은 가난한 학생들은 외면하는 사람으로, 폭력을 휘두러는 사람으로, 부정 부패가 만연한 곳이 학교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H양은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 늘 반에서 1등-3등 사이를 맴돌아서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으로 학생 시절을 보낸 학생이었다. 가정 환경이 좋지 않아도 공부를 잘하면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학급 동료들로부터 사랑과 주의 관심을 받는 것이 보통인데 H양은 공부를 잘 하면서도 학교 선생님들과 학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비난 일색으로 학교를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분석이 필요했다. H양은 캐토릭 전문대학을 나온 어머니와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와 2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의 4식구가 있었다. 남동생은 대인관계나 학업에서 별로 문제점이 없었다. H양의 아버지는 부부 관계까 좋지 않아서 H양이 4세-5세 경에 별거로 집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한번씩 아버지가 집에 오시는 경우에는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서 아버지를 피했다. 이후에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에는 아버지는 집에 오시지 않았다. H양과 아버지의 관계가 이후에 대인관계에서 남성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 분석에서 밝혀졌다. H양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생계 유지에 힘을 보태지 못하게 되자 가지고 있던 양옥집을 아래층을 전세로 주고 전세금으로 살아오다가 직접 생활 전선에 뛰어들 게 되었고 지금은 건축 현장에서 인테리어 쪽으로 노동일을 하고 있었다. 남동생은 대학원에서 장학금으로 학업을 계속하고 있었고 H양도 대학에서 장학금으로 공부를 할 정도로 머리가 명석한 학생이었다. 그녀는 치료를 받기 시작한 그 해 2월 졸업이 아니고 8월 달에 졸업을 할 때 그녀가 대학 시절에서 받은 총 학점은 4.5점 만점에 4.3점을 받을 정도로 그 학과 뿐만 아니라 그 대학 전체에서 그러한 점수를 받은 학생이 몇 사람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학생이었다.

대인관계의 어려움의 뿌리: H양은 유치원 시절에 한 동료의 어머니가 봉투에 돈이 든 것을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달하는 것을 보고난 후에 학교 선생님에 대해서 부정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H양의 어머니의 시각이 깔려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자녀들을 키우면서 학교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는 열등감이 특히 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모르고 있었다. 학교 선생님에게 봉투를 가져다 주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나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H양은 초, 중, 고등학교에서 늘 우등생이었으면서도 그녀 스스로가 이러한 어머니의 학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선생님들에 대한 부정적 사고 방식 때문에 그녀 자신이 선생님들을 멀리 하고 선생님들의 접근을 피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학급의 임원이 되는 것을 피했다. 어머니가 가난해서 집에 돈이 없기 때문에 학급에서 반장, 부반장, 학습 부장 등을 맡게 되면 어머니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눈치채고 일부러 학급에서 임원을 맡지 않았다.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게 된 것이었다. 유치원 시절에는 몇몇 친한 동료들이 있었으나 늘 혼자서 장남감으로 놀이를 하면서 남동생과 주로 놀았다. 3살인가 4살 경에 길거리에 나가서 길을 잃어서 혼자서 자동차들이 씽씽 달리는 큰 도로에서 어쩔줄 몰라서 해매고 있을 때 다행히도 어머니가 H 양을 발견하고 집에 무사히 데리고 온 기억이 생생하게 회상되었다. H양은 대학생인 지금도 바퀴벌레나 벌, 거미와 같은 곤충들을 무서워했다. 그녀 자신도 어른이 된 지금도 바퀴벌레가 방 안에 나타나면 벌벌 떨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지나치다고 실토를 할 정도로 공포증이 있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들을 특히 폭력을 휘두려는 선생님들을 두려워하고 증오했다. 그러나 H양이 직접 그 선생님들에게 폭력을 당한 경우는 없었다. 항상 마음 속으로 선생님과 학교는 부정 부패의 온상이라고 고정적 인식이 박혀있었다. 고 3이 되어서 공부에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그녀는 서울에서 명문 대학에 가는 것이 어려워지고 또 집안 사정 때문에 서울의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지방 명문대학에 들어가게 되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고 대학 입학 후에 우울한 학교 생활을 보내다가 휴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 생활: H양은 지방 명문대학에 들어갔으나 전공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대학 생활에서 흥미를 상실했다. 설상가상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아버지의 사망으로 장례식에 참석하러 아버지의 고향에 갔다. 장례식에서 눈문이 나오지 않았다고 회상을 했다.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친가 쪽 가족들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별로 친가의 가족들과 관계가 좋지 않아 자주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식 참가 때문에 그녀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지 못했고 입학 후에 낯선 얼굴들 때문에 대학에서 동료들과 친밀 관계를 피했다. 자연히 외톨이가 되었고 학교 공부에 흥미가 떨어졌다. 1학기 성적은 지금까지 학교 생활에서 받은 최악의 점수였다. 그녀는 대학 생활에 실망을 했고 공부를 하고 싶은 이유를 잃어 버렸다. 성적표를 본 어머니가 실망의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수치심 때문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대학에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결국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하고 재수를 하기 위해서 다시 수능에 도전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다시 재수 생활은 이미 1학기가 지나갔고 남은 4개월 정도의 기간으로는 역부족임을 알고 공부를 포기하고 그냥 집에 틀어박혀 지내가가 우울증이 온 것을 알고 스스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보기로 작정을 하고 그녀의 집 근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일자리를 얻었다. 레스토랑에서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있었으나 이를 악물로 열심히 일을 했다. 기술이 없는 단순한 노동일은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손에 들어오는 돈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깨닫게 된 좋은 기회였다. 이러한 일을 평생을 해도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공부를 해서 전문가가 되어야 하겠다는 결심에서 다음해 3월 달에 학교에 복학을 하게 되었고 학교에서 동료들과 관계의 어려움을 공부로 극복하리고 했다. 열심히 한 결과 평점이 4.0을 넘어가는 좋은 성격으로 다시 공부에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후부터 그녀는 오직 공부 하나에 매달렸다. 대학에서는 초, 중, 고등학교와 달리 학부모들이 교수님에게 봉투를 가져다주는 것이 없었고 교수님들에 대한 시각은 초,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완전히 달랐다. 수강생이 많은 관계로 H양이 교수님과 친밀관계를 할 필요성도 없었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처럼 공부를 잘한다고 주의 관심을 기울여주는 선생님들이 없으니 대학에서는 더 이상 선생님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이러한 조건들이 H양이 공부를 하는데 걸림돌을 제거해준 것이었다.

 H양은 대학 생활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비의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으나 남자 친구들과의 관계는 거의 없었다. 지방의 명문 대학에서 멋진 선배나 매력있는 마음에 들어하는 선배, 동료, 후배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는 H양의 푸념에서 그녀의 이성에 대한 시각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에 대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친밀감을 두려워하는 심층에 문제점을 읽을 수 있었다. 왜 여자는 남자들에게 지배를 받아야 하고 남자들을 위해서 노예처럼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수 없이 제기를 한 것이 그 이유였다. 그녀는 세상이 남성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여성들에게는 차별대우와 냉대로 여성들이 대우를 받지 못하고 멸시 천대를 받고 있다고 분노했다. 그녀의 내면 속에 갇힌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친가 가족 구성원들,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 아버지 등에 대한 분노가 방향이 바뀌어서 학교 선생님으로 학교 라는 조직 단쳬로 그리고 사회에 대한 편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H양은 시간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를 해도 주의 집중 정도가 떨어지고 진도가 나가지 못하는 것 때문에 계속해서 시계를 쳐다보고 시간이 지나감을 체크하는 정도가 심했다. 밤에 잠을 잘 때 숙면을 하지 못하고 자고 나면 피곤하고 긴장이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잠을 잘 때 계속해서 대인관계나 과거의 문제들이 떠올라서 그 생각에 빠져서 생각이 꼬리를 물로 침투하는 바람에 새벽 3시-4시 경에야 겨우 잠이 들 때가 많다고 했다. 졸업을 하고 나서 취직 공부를 하기 위해서 집에서 혼자서 공부를 하고 있으나 능률이 오르지 않고 공무원 시험이 100대 1일을 넘어가는 현실을 탓하면서 사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공부를 해도 취직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관적이어서 우울했다.

그녀는 초반기에 치료자와의 관계에서도 직접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남동생을 통해서 치료 시간을 조정할 정도로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녀는 첫 치료 인터뷰를 하러 오는 시간에도 남동생의 오토바이를 타고  치료실에 들어왔고 치료자에서 직접 자신을 소개한 것이 아니고 남동생이 누나를 소개를 하면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매사에 그녀는 직접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고 남동생을 대리인으로 그녀의 대변인으로 사용하고 있음이 드러난 증거였다.

 

이론적 근거

 A양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친밀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아버지와 껄끄러운 관계는 대부분이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 자신이 친밀관계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처녀 시절부터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처녀로 나이가 많아지면서 부모님의 강요에 의해서 결혼을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관계에서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키다가 결국 두 사람은 별거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떨어져 나감으로써 제외되었다. 이러한 별거 뒤에는 어머니의 남자에 대한 두려움과 친밀관계의 어려움이 깔려 있어서 어머니는 결국 자신의 심층의 생각대로 남편을 가족 구성원의 자라에서 밀어낸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의 이유는 어머니의 처녀 시절의 사고 방식이 결혼 후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H양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까 자주 타투고 갈등을 하는 것을 것을 보면서 자랐다. 아버지가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제외되고 나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서 어머니의 불안감이 딸에게 반사되어진 것이 분명했다.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 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자신의 생각, 느낌, 상상, 사고, 지각 등을 미주알 고주알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어린 시절에 별로 없었다. 항상 껄끄러움 때문에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자신의 약점을 치료자 이외에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프로이드의 오디프스 콤프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 사람 관계에 걸려든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이후에 학교 선생님으로 확대되었고 학교라는 조직 사회로 확대되었고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확대된 것이었다.

 치료의 과정에서 그녀는 세상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지를 알 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느 것만 본다. 아무리 증거를 갖다대도 자신이 보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보지 않는다" 고로 그러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왜곡되어있다는 것을 모른다. 단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사고 방식이 정확하다고 믿게 된다는 프로이드의 말이 실감이 났다. 치료자는 이러한 시각의 원천을 찾아내고 그러한 시각을 바로 볼 수 있게 수정하는 것이 치료자의 중요한 과업 중에 하나이다. 그녀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 좋은 성적으로 학교 공부를 우등으로 졸업했고 대학에서 전체 만점이 4.5 평점에 4.3을 받을 정도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더욱 더 공부를 열심해 해서 대학에 교수나 가르치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공부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대학원을 선택하거나 전문 과정을 이수해서 이후에 학교나 대학에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는 경향이 많은 것은 자신의 자신있는 분야가 공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H 양은 이러한 사람들과 달랐다. 학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 때문이었다. 아울러 외국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가 한 몫을 했다. 우리나라에는 자녀 양육도 자녀 교육도 마음 놓고 맡길 수 없는 나라이다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돈봉투가 판을 치기 때문에 결혼해서 자녀를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거서 양육을 하겠다는 생각과 결혼하고 이민을 가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전공은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부전공으로 영어를 했다고 했다. 졸업 후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지만 경쟁 비율이 너무 심해서 자신감이 없고 공부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시간만 보낸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제 졸업 후에 생각해 보니 영어 교사 자격증을 딸 것을 하고 후회를 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어 교사들을 대거 채용하겠다고 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대학 시절에 영어 교사 자격증을 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치료 결과

 H양은 자신의 부정적 시각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걸림돌이 되어왔는지는 깨닫게 되었고 자신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노력을 했다. 많은 시각들이 변화가 되었으나 그러나 그녀의 성격에 대한 수정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불면증은 완화 되었고 시간에 강박은 많이 줄어들었으나 노동일을 하는 어머니의 수입으로 치료를 계속하기에는 H양의 죄의식이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는 졸업 후에 몇 군에 취직 시험을 쳤으나 직장을 얻는데 실패를 했다. 이후에 직장을 가지게 되면 다시 심리치료를 받을 것인지는 그 때가서 고려하기로 하고  치료를 종결하게 되었다. 그녀는 심리치료를 스스로 받으려고 제발로 걸어오지 않았고 남동생에 의해서 떠밀리러 온 것 사람이었다. 그녀는 치료의 과정에서 심리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 인정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심리치료에 대한 반신반의는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