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대화가 없는 20대 후반의 여성 A양

증세: 표면으로 드러나는 특별한 증세는 없으나 가족구성원들과 말을 하지 않고 친구가 없는 혼자 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여성으로 부모가 시키는 일은 잘 하지만 말을 하지 않아서 답답해 하고 야단을 치면 삐져서 잘 운다.

진단명: 대인공포증, 자아분열 성격장애, 회피적 성격장애

연결: A양의 언니의 소개로 치료자를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치료를 받겠다는 의지가 약해서 언니와 부모님에게 떠밀리어 오게 되어 치료를 받게 됨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에 2시간씩 분석 상담 치료를 6개월동안 받았음

치료 결과: A양은 치료자가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할 뿐 스스로 물어보거나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지 않았지만 물어보는 질문에는 대답을 했다. 치료 4개월 쯤에 "왜 변화가 없습니까?"하고 질문을 했다.이 시점에서 치료자가 심리치료는 저절로 와서 치료실에 앉아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신의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고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내 자아가 어떻게 작동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을 한 다음에 자신의 내면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치료를 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6개월은 A양에게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어서 눈에 띄게 변화가 된 것을 볼 수 없었다. A양은 치료자와 마주 보고 대화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몇 개월 쉬었다가 치료를 계속하기로 하고 6개월 치료를 종결했다.

 

치료의 과정

 A양은 언니의 소개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처음에 치료실에 들어와서는 모기 만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치료자가 물어보는 말에만 대답을 했다. 치료자는  A 양의 어린 시절 양육에서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졸업 후에 지금까지의 생활에 대해서 물어보면서 A양으로 하여금 말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특이 하게 A양은 자신의 내면의 욕구를 말로써 표현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부모님과도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A양의 부모님은 도시의 변두리에서 사과 농원을 하는 분으로써 A양이 어린이 시절부터 과수원 일에 몰두해서 A양의 양육은 언니가 도 맡아서 했다고 했다. 위로는 오빠가 있고 그 다음에 언니가 있고 A양이 있고 그리고 남동생이 있었다. 오빠와 남동생은 어머니가 아들이라고 많이 챙겨주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나 언니와 A양은 부모님에게 자신들의 욕구를 이야기하지 않아서 부모님이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만 기다려온 것이었다.

 오빠는 중학교 2학년 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같은 교회의 신도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일찍 뉴질랜드 유학을 가서 1년 정도 지내다가 돌아온 후에 검정 고시를 해서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외국 국적의 여성과 결혼해서 영어 교사를 하고 있었고 큰 문제점은 없었다. 그러나 언니와  A양은 대인관계에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는 스스로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문제점을 알려고 노력하는데 비해서 A양은 스스로 어떤 것을 하려고 하는 의욕도 없고 자신의 문제점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느나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부모님이 어떻게 해 주기를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치료는 A양으로 하여금 입을 열 게 하고 자신의 자아가 있음을 알 게 하고 스스로 자아를 찾아서 그 내면의 자아가 어떻게 작동을 하는가를 알 게 만들어주는 것에 치료의 목적을 두었다. 그래서 먼저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잘하고 있는 것, 바라는 것, 기대하는 것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초점이 맞추어졌다.

 먼저 어린 시절의 양육 과정과 성장 과정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A양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했던 것이 없었다. 부모님에 해주는대로 그대로 살아온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A양은 학교 생활에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에 갈 때는 언니와 함께 갔다. 그래서 옆에서 언니가 엄마의 대리 역할을 한 것이었다. 다른 동료 학생들과 갈등은 없었다. 학교에서 시키는 것은 잘 해갔다. 초등학교 시절에 생각이 나는 짝지를 기억해보라는 말에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특별히 학교 생활에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나 이벤트들은 거의 없었다. 내성적이어서 친구들이 물으면 겨우 대답을 할 정도였고 스스로 동료들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을 때 가족들과 함께 몇 년 전에 자동차를 타고 동해안으로 여행을 간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언니와 초등학교 시절에 찍은 사진에 자신이 웃고 있는 모습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회 때에 이웃 아저씨기 찍어준 체육복을 입고 있는 사진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는 중학교 때 쉬는 시간이면 혼자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옆에 앉은 짝지가 A양이 그린 그림을 보고 잘 그렸다고 칭찬을 하던 일이 생각난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여상으로 진학을 했다. 여상을 졸업 후에 약 1년 동안 직업 학교에 다녔다고 했다. 일종의 전문 대학의 과정으로 그곳에서 컴퓨터 관계 공부를 했으나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말이 없이 지냈다고 했다. 그 후에 2년 동안 전자 회사에서 근무를 했고 그 때 같은 팀이 7명이 같이 포장일을 했으나 그녀는 그들과도 별로 말이 없이 지내다가 하는 일이 지루하고 힘들어서 그만 두었고 지금은 부모님 밑에서 과수원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성에 대한 관심을 물었을 때 이성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 가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앞으로 결혼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결혼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님은 A양이 일을 할 농번기에는 A양에게 하루 노동일을 계산해서 한 달에 월급 형식으로 지불을 해 준다고 했다. 그 돈으로 그녀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용돈으로 쓴다고 했다. 그 돈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약 50만원 정도 된다고 했다.

 A양은 취미 생활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특별한 취미 생활은 없고 지금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배우들 사진을 모으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누구 사진을 모았느냐고 물었을 때 남자 배우는 "원빈"을 좋아해서 그 사람의 사진이 모두 약 50개가 넘는다고 했다. 여자 배우로는 "심은하"를 좋아해서 그 사람의 자신도 약 50개가 넘는다고 했다. 원빈은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었을 때 남자다움에 매력이 있다고 했다. 특히 "우리 형님"이라는 영화 속에서 반항적인 10대의 청소년으로 나와서 형님의 희생으로 스스로를 깨닫고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 매력이 있었다고 했다. 심은하는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었을 때 심은하는 청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다. 얼굴이 예쁜 것도 좋아하는 매력이라고 했다. 그 이외의 배우들은 별로 좋아하는 배우가 없다고 했다.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일본 만화를 약 30권 정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잘 보지 않지만 주로 DVD의 복사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여성들의 옷을 그림으로 그리는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패션을 디자인 한 스크렙 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좋아하는 과일로는 여름 철에 수박, 가을에는 사과 등이 있고 주로 여름을 좋아하고 추운 겨울은 싫어한다고 했다. 음식으로는 생선을 주로 많이 먹으며 몸에 살이 약간 찐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자신은 못 생겼다고 스스로 평가절하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키는 작은 편이고 얼굴은 못생긴 편으로 몸이 뚱뚱하고 매력이 없어보인다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요구하는 심부름은 하지만 아버지와 정면으로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너무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싫어한다고 했다. 끊임없이 이것 저것으로 불평을 한다고 했다. 가족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언니라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서 집안에 같이 있어도 언니와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들은 식사 때 한번 서로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지만 대화가 별로 없다고 했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교회에 가는 일이라고 했다. 왜 싫어하면서도 교회에 가느냐고 했을 때 부모님이 같이 가자고 해서 할 수 없이 간다고 했다. 싫어해도 싫어한다는 표현을 하지 못했다. 교회에 가면 특히하게 대인관계가 되지 않으니까 껄끄럽고 무안해서 대로록 이면 사람들과 접촉을 피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3회를 교회에 나가는데 화요일 저녁에는 7시 30분에 시작해서 약 2시간 동안 성경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일반 신도의 집에서 약 13명 정도의 신도들이 모여서 예배와 성경공부를 한다고 했다. 부모님과 언니가 같이 참가하기 때문에 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곳에가면 그녀는 도착 후에 약 10분 정도 지나가면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약 3년 전부터 눈물이 나오는 것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왜 눈물이 나오는가라는 질문에 그녀 자신이 한심해서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3년 전부터 교회의 성경공부 모임에서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사를 하지 않게 되면서 더욱 껄끄럽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아예 정면으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경 공부가 끝나면 총알같이 뛰쳐 나온다고 했다.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도망처 나온다고 했다. 목요일은 교회내어서 약 100여명이 집단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르 한데 그 날에서는 하루 종일 우울하다고 했다. 이유는 아침부터 그곳에 갈 생각을 하면 고통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요일 예배는 사람들이 많이 같이 모이기 때문에 신경이 덜 쓰인다고 했다.

 그녀는 부모님의 과수원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지내는 것이 약 5년 정도가 되어간다고 했다. 이제 사과 농사를 짓는 일에 익숙하게 되어간다고 했다. 일이 많을 때는 힘들지만 그런대로 일에 잘 적응해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과 농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상세하게 하도록 유도를 했다. 부모님은 A양이 어린 시절부터 7살 때부터 사과 농사를 시작해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사과 나무가 약 500그루 정도 되고 복숭아 나무가 몇 그루정도 섞여 있다고 했다. 봄이 되면 사과 꽃이 피면 그 꽃들을 속아내어 준다고 했다. 온 가족들이 함께 합동으로 사과 꽃이 너무 총총하게 붙어있으면 사과가 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꽃들을 골라서 따 주어야 큰 사과가 열린다고 했다. 여름이 되면 사과 나무 밑에 은박지 종이를 깔아서 햇볕이 사과에 반사되어 붉게 익도록 한다고 했다. 사과가 작은 것은 골라내서 미리 따 주는 작업도 쉬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가을이 되면 사과를 따서 7개의 종류로 분류를 하는데 이것은 사과를 분류하는 기계가 한다고 했다. 사과 한 나무에 약 15개 상자정도의 사과를 수확할 수 있고 한 종이 박스 사과 상자에 약 30개의 사과와 작은 것은 50여개 정도가 들어간다고 했다. 수확한 사과는 어머니가 농협에 가지고 가서 도매값으로 넘긴다고 했다. 사과가 비바람에 떨어지거나 상처가 나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그 사과들은 모아서 사과 공장으로 보낸다고 했다.

 

이론적 근거

 A양은 자기 표현이 스스로 되지 않는 사람으로써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아서 치료자는 그녀가 말을 하도록 유도를 해야 했다. 그녀가 치료를 시작한지 5개월이 지나가면서 그녀는 치료실에 들어와서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할 때 긴장된 자세로 쪼그리고 소파 끝에 앉아서 끝나면 총알처럼 도망할 준비를 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무의식적인 것이어서 그녀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한번도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과 마주 보고 앉아서 2시간 동안 서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가 대도록 이면 편하게 앉아서 마음 속에 생각나는 상상, 느낌, 생각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해도 그녀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치료 5개월 정도 되었을 때 그녀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 깊숙이 앉게 되었다. 얼굴에도 긴장의 표정이 사라지고 이야기도 어느 정도 자유롭게 편안하게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는 너무나 많이 부모님의 억압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치료자는 대화는 서로 마주 보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마음 속에 있는 생각, 느낌, 상상들을 상대 방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내가 원하는 것, 내 욕구를 이야기하는 것임을 알 게 만들어주려고 했다.

 그녀에게 자아를 찾게 해주려고 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바라는 것, 기대하는 것, 제거하고 싶은 것 들을 이야기해서 스스로 알도록 유도하려고 시도를 했다. 그러나 6개월 동안 그녀는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도착해서 2시간을 맞치고 갔다. 그러나 그 시간이 그녀에게 처음에는 고역이고 고통이라고 말을 언니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한번은 너무 힘들어서 한번은 결석을 했지만 그 이후에는 한번도 결석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치료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는 것임을 느끼게 해주려고 했다. 항상 대화는 무궁무진으로 이야기는 끊임없이 계속됨을 인식시켜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지금 치료자와 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화를 해 나가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했다.

 A양은 부모님의 장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을 때 아버지는 몇 년만 해도 늘 술을 많이 마셨고 용기가 부족한 점이 단점이라고 했다. 지금은 술을 끊고 어머니와 갈등도 감소되었으나 늘 어머니와 싸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친가의 형제들과도 별로 사이가 좋지 못하고 늘 외톨이로 지내왔따고 했다. 사과 농사에서 수확된 사과들을 농협에 파는 일은 즉 돈에 관계된 문제는 어머니가 전담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대인관계에 문제가 많다고 했다. 이웃 사람들과도 별과 접촉이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하는 말마다 딸들을 평가절하 하고 비판으로 일관해서 언니와 A양의 자아가 부정적이 되었고 자신감이 결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치료 결과

치료자는 그녀를 통해서 그녀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 상상들, 이미지들, 느낌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양육되어온 것들과 가족들과의 관계, 동료들과의 관계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내면 세계를 옅볼 수 있었다. 그녀는 자폐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어떻게 대화를 해나가는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등을 모르고 있었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대화가 끊어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치료자와의 편안한 관계에서 끝임없이 이야기를 해 나가게 되면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고 어떤 이야기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게 만들어주는 것이 첫 번째였다.

 또한 부모님이 심리치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부모님은 6개월 동안의 치료 기간 동안에 왜 딸이 마음대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가? 치료 효과가 없다고 생각해서 병원에 입원을 해 보는 것이 어떻하냐고 A양에게 권유를 해왔다고 했다. 부모님은 어린 시절의 양육이 딸에게 영향을 미쳐서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와 치료자 사이에 이야기는 계속되었지만 6개월의 치료 시간은 그녀에게 너무나 짧은 치료 기간 이었다. 그녀는 몇 개월 쉬었다고 다시 치료를 계속하기로 하고 치료 6개월이 종료 됨으로써 치료를 종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