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27의 남자 Z 군

증세: 여자들은 왜 군대에 가지 않는가? 군에서 복무한 세월이 너무 억울해서 끊임없이 머리 속에 침투로써 "남자들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쉴 새없이 침투해 들어와서 노여워하는 대학 3학년 남학생

진단명: 강박적 성격장애, 대인공포증, 자아분열 성격장애

연결: 부모님께서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 주소를 보고 먼저 컨설팅을 요청해서 2시간 동안 상담을 한 후에 Z군에게 치료를 받아보라고 연결해서 치료를 받으러 나오게 되었음

치료 기간: 1회에 2시간씩 1주일에 3회씩 분석 상담 치료를 6개월동안 받았음

치료 결과: Z군은 머리 속에 침투하는 생각 때문에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고 대인공포증으로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서 대학 입학 후에 벌써 3번째로 대학을 전학해서 대학 3학년으로 공부는 하고 있으나 이 대학에서도 한 학기는 그런대로 다녔으나 두 번째 학기부터 동료들과의 어려움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으며 외국 이민을 생각하고 있었다. 치료 6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는 최면 치료를 병행하려고 했다. 그러나 심리치료는 두 개를 같이 함께 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 먼저 최면 치료를 받고 나서 그 다음에 심리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치료자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최면 치료를 받고 나서 치료자를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치료의 과정

  Z군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 속에 끊임없이 침투해 들어오는 특정한 생각은 군에 복무한 세월이 허송 세월로 느껴져서 분노해서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군에 특기병으로 방위로 근무를 했다고 했다. 위험한 화공 약품을 다루는 특수 자격증을 따서 군에 방위병으로 자신의 아버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군복무를 마쳤다. 그러나 그가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여자들은 군에 가지 않느냐?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여성들은 남자처럼 군에도 가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남자들과 대등관계를 평등관계를 주장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했다. 그는 병무청에 전화를 해서 왜 여자들은 군대에 가지 않는지? 여자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는가? 법을 고쳐서 여자들도 남자와 같이 똑 같이 군복무를 해야 한다고 항의 전화를 했으나 병무청에서는 그것은 법률로 그렇게 정해진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라고 반문을 해 왔다고 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머리 속에 침투해 들어왔느냐?고 물었을 때 5년 전부터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자신의 머리 속에 침투해 들어와서 그 생각에 골몰하느라고 공부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시점이었다.

 Z군이 또 한가지 끊임없이 머리 속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은 부모님이 왜 자신을 학교에 보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부모님에게 학교에 가지 않고 검정 고시를 해서 대학에 가겠다고 간청을 했으나 부모님은 들어주지 않았다. 왜 검정 고시를 해서 대학에 가려고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학교 생활에서 잘난 학생들을 잘난체 하는 학생들을 눈뜨고 보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제잘난 체 하는 학생들을 꼴 보기 싫고 그들을 두들겨 패주고 싶다고 했다. 학교 선생님들의 권위적인 면도 한몫을 했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돈 봉투를 가져다 주는 학생들만 몇몇 학생들만 이뻐하고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선생님에게 분개했다.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은 단체 기합에서 자신이 약간 거드름을 피웠다고 불러 내어 심하게 체벌을 한 것에 분개했다. 그 선생님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Z군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쌍둥이 형제가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 게 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형제들에게 분노해서 지금도 가끔 머리 속에 그 때의 생각들이 침투해들어 온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학급에서 싸움질을 하며 공부도 잘 못하는 동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당시에 약 10만원 이상 가는 게임기를 빼앗겨서 되돌려 받지 못했던 것에 분노했다. 그는 그 이야기를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이후에 그 게임기는 돌려받지도 못했고 그 학생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Z군은 부모님이 왜 자신을 가지 싫어하는 학교에 강제로 보냈는지 원망했다. 유치원 때는 이름난 유치원에서 이름난 사립 초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그곳에서 어려움이 계속되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으나 부모님은 듣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어머니는 Z군의 성적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과외 선생님에게 특별 과외를 받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는 성적이 좋지 않으면 어머니로부터 체벌을 받았던 적이 많았다고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Z군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자주 체벌을 가했다고 했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많았다.

특이하게 그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가 거의 없었다. 친한 친구들이 없고 늘 학교에서는 외톨이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학급 동료들이 가까이 접근을 해오면 스스로 거리감을 두려고 했고 친구들과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불편해서 친구들을 사귈 수 없었다고 했다.

 학교에서 있어던 동료들과의 어려움이은 부모님에게 절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부모님과 대화가 거의 없었다. 그는 부모님이 왜 자신을 학교에 보냈는지 지금 생각하면 억울하다며 경찰에 고발을 했다고 했다.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서 부모님이 자신을 학대한다고 고발을 했고 부모님과 같이 파출소에 가서 조서를 받았다고 했다. 파출소에 경찰관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부모님이 자녀를 학교에 보낸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Z군의 고발을 거부해서 돌려 보냈다고 했다.

 최근의 상황은 학교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고 정신 집중이 안되고 잠이 오지 않아서 밤과 낮이 거꾸로 되어 밤에는 거의 새벽 3시-4시까지 컴퓨터 게임에 매달려 있고 낮에는 12시 이전에는 일어나지 못하고 잠을 자야하는 것 때문에 대학의 수업도 저녁 강의를 주로 듣고 있었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병원에 가보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3년 전에 스스로 부모님에게 정신과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몇 군데 신경 정신과에서 약물을 치료 받고 있으나 효과가 없어서 최근에는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신경 정신과에도 가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Z군의 증세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Z군이 대학 1학년 때에 한번은 부모님에게 반항적으로 항의를 하다고 아버지에게 골프 채로 맞은 이후로 혼자서 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고 정신병원에 가게 된 것이 최초의 증세였다고 했다. 아버지는 중소 기업을 경영하는 사업가 이고 어머니는 가정 주부로 어린 시절부터 Z군과 함께 했다. 위로는 누가가 한명 있었다. 그는 작년에 누나가 간섭을 한다는 이유로 누나에게 심하게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제는 부모님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아버지, 어머니가 Z군을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충동적이 되거가고 있었고 일상생활에서 리듬이 깨어져서 밤과 낮이 거꾸로 되었다. 이제는 낮에는 12시 이전에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지난 해에 누나와 다툰 이후에 서울에 xx 병원에서 약 2주일 간 입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때 그는 자신을 정신 이상으로 취급하는 것에 분노해서 의사 선생님에게 퇴원을 하겠다고 간곡하게 말씀드리고 퇴원을 했다고 했다.

 

이론적 근거

 Z군의 이야기를 종합해 가면서 그의 행동에 대해서 분석이 진행되어갔다. 그는 지금까지 제일 행복했던 시절에 일본에서 유치원 때 시절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지냈던 약 3년의 기간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회고 했다. 그 때 이웃에 사는 일본인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놀았던 기억들을 회상하고 그 때 몇몇 친구의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Z군이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대기업의 사원으로 있으면서 해외 파견으로 일본으로 근무를 발령을 받았고 가족들이 모두 일본에서 약 3년 동안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 Z군을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도록 만들겠다고 결심을 하고 우리나라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집에서 Z군은 우리나라 말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아 때부터 일본 말을 잘해서 그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아버지는 일본말이 유창했으나 어머니는 일본 말이 유창하지 않았다. 분석 결과 Z군이 0세 - 3세 사이에 어머니와 친밀 관계에서 결함이 생기게 되었고 이 결함이 성장해 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친밀관계를 만들어가지 못했던 것이었다. 일본에서 살 때는 친구 관계가 좋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서 놀았다. 3년 후에 우리나라에 되돌아 오면서 Z군은 한국의 유치원에서 생활이 시작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는 우리나라 유치원에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우리나라 말도 서툴렀고 특히 마음을 열고 친구를 만들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이 쌍둥이 형제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유치원 때의 기억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머니는 유명한 사립 초등학교에 넣었다. 그곳에서도 Z군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른 동료들과 경쟁에 휩쓰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잘 키워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공부에 압력을 가했다. 학교 공부가 끝나면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바이올린 학원, 태권도 학원 등에서 저녁 7시가 될 때까지 공부를 하러 다녔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관계에서 자신의 의사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에서 Z군은 일본말을 잘 했으나 어머니가 일본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서로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누적되어 그는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고통스러운 일들을 제대로 어머니에게 하소연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는 것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가 왜 부모님에게 자신이 검정고시를 하려고 했는제 강제로 자신을 학교에 집어 넣었다고 분노하고 노여워하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동료들과 조그만 갈등에도 괴로워서 제대로 그 갈등들을 뚫고 해결해나가지 못한 것은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이후 사립 초등학교 5학년 때 할 수 없이 공립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도저히 그곳에서 지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전학을 간 곳에서도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그는 처음에 입학한 대학에서 다른 대학으로 전학을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적응이 안 되어서 1년간 휴학을 한 후에 또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갔다. 그곳에서 한 학기 동안에는 그런대로 잘 해나갔으나 3학년 2학기부터 문제는 또 계속되었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피하려고 하는 그의 행동 패턴이 그대로 드러났다. 입학해서 처음에는 동료들이 서로 모르니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한학기를 지나면서 다른 동료들을 서로 친구가 되어 삼삼오오 서로 잘 어울리는데 자신은 점점 더 껄끄러워지고 관계를 하기가 어려워짐을 모르고 있었다. 그냥 동료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모욕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피하려고 한 것이었다. 지금은 그 대학에서 휴학계를 내고 교육이 필요없는 남미의 에콰토르에 이민을 가겠다고 했다. 왜 하필 남아메리까의 에콰토르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인터넷에서 보니까 그 나라에는 의무 교육이 없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성들에 대해서 왜 그렇게 분노하고 군대에 가지 않는 것에 불공평에 참을 수 없는가를 분석한 결과 그는 어머니와 누나에 대한 분노가 내면에서 휴화산으로 쌓여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을 강제로 학교에 집어 넣어서 자신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것 때문에 누나는 자신을 돌보아주지 않았다고 간섭을 많이 한다고 이유로 어머니와 누나를 자주 폭행을 가해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Z군의 여성에 대한 분노 이면에는 그는 내면에서 여성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열들감도 한몫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대학생이면서도 이성과의 데이트도 한번 하지 못했다고 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성에 대한 끌림이 있었으나 동성과의 친구 관계도 되지 않는데 이성과의 관계를 더욱 어려웠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자위행위를 하게 되었으나 자위행위도 자신도 모르게 정액이 다리에서 흘러내리면서 하게 되었다고 했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어서 자위행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이후에 자위행위에 강박이 되었고 지금은 자위행위를 아예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으나 몇 주일이 지나면 자위행위에 강박이 되어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에 대한 적대 감정이 말로써 표현이 되지 않고 사회적 불평등으로 끊임없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에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라고 부모님에게 떠밀리어 왔을 때 치료자에게 "선생님 저의 문제는 '왜 여성이 군대를 가지 않고 불평등한지 그것이 내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대답을 물어보았을 때 아무도 그것에 대답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선생님은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다. 치료자는 "심리치료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고 치료에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고 왜 그런 생각이 들 게 되었는지를 분석해서 그 문제의 발생 원인을 찾아내어 그 문제를 뚫고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치료에서는 왜 여성과 남성이 불평등하게 차별을 받고 있는가를 다루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 속에서 어떤 갈등들이 그런 문제를 만들어냈는가를 다룰 것이기 때문에 내 생각과 감정과 상상들을 이야기하게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면서 치료를 시작했다. 문제는 Z군이 자신의 고통과 상상과 느낌들을 상세하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서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말로써 자신을 표현하게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Z군은 자신의 내면의 상상, 과거의 경험, 생각, 느낌들을 말로써 표현한데 대단히 서툴렀다. 말을 자연스럽게 구샇사지 못했다. 그가 하는 말은 정형화해서 정해서 있었다. "선생님 나는 왜 여자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가?하는데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가 아니면 "왜 부모님이 나를 학교에 보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등으로 한정되어있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내면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 즉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해 오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소상하게 세밀하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면서 그런대로 4개월정도 분석이 이루어지면서 그는 이야기 시간에 편안해 했다.그러나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치료를 해 나가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서 치료에 효과가 있습니까?를 반문했다. 치료가 약 4개월로 접어 들면서 그는 마음이 전보다 편안해지고 이제는 긴장이 많이 풀렸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고역인 것은 분명했다. 이유는 이러한 경험이 어린시절부터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이 이후에 최면 치료로써 한방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음을 먹게된 이유였다. 치료를 중단하는 불씨가 된 것이 사실이었다.

 Z군은 대인공포증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상호작용으로 생기는 다양한 경험들을 통합하는 과정에 결함이 생겨서 경험들이 통합되지 않아서 자아가 분열되어 그 때 그때마다 단 한가지 생각에만 관계해서 행동을 하게 되니까 다른 사람과 관계 자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남녀의 사회적 불평등에 분노하는 것은 그가 남자와 여자의 생리적 차이와 사회 문화적 차이 등에서 오는 다양한 욕구나 관계 등을 마음대로 표현해서 다른 사람들과 교환으로 사회를 알아나가는 것이 차단되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기본 룰들이 이해되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세상을 알아가며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고 다 알지도 못한다. 고로 우리는 부모님이나 친구들이나 동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배운 것을 마음 속에서 통합하는 자아를 만들어낸다. 그 자아가 우리의 경험을 다루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말을 만들어낸다. Z군은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들만으로 한정되어있다. 왜 자위행위가 필요한지, 왜 친구들과 사귐이 필요한지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과서에 불평등은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회제도에서 인간이 적응해나가면서 사회 환경에서 오는 다양한 의견들이나 문제들은 스스로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대화에서 자신이 스스로 이해라고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것인데 Z군은 이러한 과정이 빠져 있다는 것이 바로 생각이 통합되어있지 않고 조각나서 흩어져 있어서 그 때 그때 마다 한 조각이 작동을 하고 있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Z군이 하는 말 자체는 틀린 말을 아니다, 여성은 군대에 가지 않고 남자만 간다. 그런데 여성들은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불평등을 이야기 하면서 남자들과 대등한 권리를 주장한다. 여기에서 Z군이 모순을 발견하고 분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분노의 핵심은 다양한 의견들을 수용하고 종합해서 사회를 이해하고 적응해 나가는데 결함이 생긴 것이고, 또 자신의 고통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던 어머니에 대한 분노이고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이해를 해주지 않는 누나에 대한 적대 감정이 깔려 있음을 Z군은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그는 자신이 학교에 다니면서 고통스러웠던 어려움들을 동료들과의 갈등들을 어머니에게 표현할 능력이 없었고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상상들을 솔찍하게 표현하고 그들의 의견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면서 대인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기능이 부족했다. 그 기능을 제대로 배워주지 못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어머니에게 있다. 그는 이 점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Z군은 부모님과 누나와 사사건건 충돌을 했다. 충돌에서 폭력을 사용해서 부모님에 더 이상 그를 컨트롤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부모님이 Z군의 폭력에 노이로제가 되어 경찰에 아들이 자신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고 신고를 했고 그가 파출소에 호출이되어갔다. 경찰관은 한번 더 신고가 들어오면 그를 구속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Z군은 다른 사람과 갈등을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치료자는 Z군에게 집을 나와서 독립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로 모르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서 오피스텔을 한 개 세를 내어 얻어서 나올 수가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는 부모님의 간섭에 참을 수 없어 했다. 어머니는 Z군이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되자 일종을 감시아닌 감시를 하게 되었고 자신이 밤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Z군의 방을 슬쩍 쳐다보는 것이 습관화 되었다. 그는 어머니가 하루에도 7회-8회 정도로 자신을 염탐한다고 분노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시작한지 한 달 만에 그는 혼자서 생활하게 되었고 부모님도 기뻐했다.

 

치료 결과

 Z군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대인관계 자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상상들을 표현하는 치료의 과정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빨리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밤에 자위행위의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했다. 생리적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자위행위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욕구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치료 3개월 정도 지나면서 마음 속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 머리 속에 생각들이 점차로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고 좋아했다. 그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잠시 치료를 쉬고 싶다고 했다. 1주일에 3회씩 1회에 2시간 분석 상담을 지속하면서 기말 고사가 겹치면서 피곤해 했다. 그는 아침에는 아예 일어나지를 못했다. 항상 1시-2시가 되어야 일어날 수 있었다. 치료 시간도 그 시간에 맞추어야 했다. 대학에 강의는 전부 저녁 6시 이후에 잡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을 이야기를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신의 문제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조급하게 서두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치료자가 Z군에게 그의 생각을 모두 바꾸어야 하며 그렇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이 우선임을 이야기 했으나 그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약 2 주일을 결석한 후에 기말 고사 후에 다시 치료가 1주일에 3회로 계속되었다. 그는 부모님의 소개로 최면 치료사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나에게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서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심리치료는 다른 전문가들과 동시에 받게 되면 문제가 생기게 된다. 치료자 마다 이야기가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따라가야 할지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고로 다른 전문가가 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들은 그 전문가가 치료가 끝나기 전에는 환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이야기해주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치료자는 그에게 최면 치료 전문가에서 먼저 치료를 받고 나서 이후에 나한데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그 때 다시 오라는 이야기와 함께 Z군의 치료를 끝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