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의 과정

D씨는 문제가 많았다. 프로파일링에서 자신의 문제를 솔찍하게 밝힌 것처럼 숨김이 없이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D씨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폭력과 학대를 받고 자란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D씨를 이유없이 구타하고 폭행을 일삼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겨울 방학을 내고 집에 왔을 때 아버지가 성적표를 보자고 했다. D는 성적표를 선생님이 주지 않았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아무런 말로 없이 D의 빰을 때렸다. 몇 대를 얻어맞고는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성적표를 가져오다가 쓰레기 통에 버렸다고 했다. 그 때 D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더 많이 얻어맞는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척 할머니가 방문을 오셨다가 간 후에 D가 장난감을 사 가지고 놀고 있는데 아버지가 와서 "너 그 장난감 할머니가 준 돈으로 샀지?"라고 물었다. D는 정직하게 "아닙니다. 내 돈으로 산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이유없이 뺨을 얻어맞았고 다시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친척 할머니가 준 돈으로 샀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식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고 거짓말을 용서할 수 없다고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뜻에서 아들을 때린 것 같으나 조금만 참을성이 있었더라면 같은 반 동료에게 물어보았으면 알 수 있었을 것을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분명히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여름 방학 때는 방학 때 성적표를 내어주지만 겨울 방학 때는 성적표를 내어주지 않고 춘기 방학으로 학교가 한 학년이 끝나는 날 성적표를 내어준다는 것을 아버지가 오판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심리적인 상처가 D씨에게 미친 영향은 이후에 D씨가 어떤 것이 옳은지 어떤 것이 거른지를 분간을 잘못하는 인지 지각에 문제점을 안겨 주었다. D씨는 치료의 과정에서 참과 거짓 사이에 명확한 기준에 혼란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것이 진정으로 옳은지, 거른 것인지를 혼란해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고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옳은 일인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옳은 행동인지 잘못된 행동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했다. 직장의 상사나 동료들이 그렇게 한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가면서도 의심을 하고 어떤 때,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지를 잘 모르겠다고 했다.

 D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했다. 왕따를 당한 것은 아니지만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외톨이로 전자 오락 게임이나 혼자서 놀았던 적이 많다고 했다.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논 적이 별로 없었다. 이유는 D가 학급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아버지가 싫어했고 또 아버지는 특히 집 안에서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서 언제나 집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야 했다, 저녁에 늦게 들어 오는 것도 싫어했고 언제나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실 때는 D는 집에서 있어야 했다.

D씨의 결정적인 외톨이 현상은 어린 시절에 엄마가 D의 양육을 직접 맡지 않고 친척 누나가 맡아서 자신을 돌보아주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양장점을 운영하고 있어서 언제나 저녁 10시 경에 집에 들어왔고 어린 시절 즉 0세-5세까지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즉 유아기에 자신을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와는 대화는커녕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주눅이 들었고 아버지를 두려워해 왔다. 거기에다 아버지는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보이면 가차없이 주먹이 날아오거나 뺨을 때리는 바람에 아버지 옆에 있기가 두려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저녁 때 집에 들어와서 한번도 웃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언제나 근엄하고 엄격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D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잠을 잤다고 했다. 사춘기가 빠르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되는데 사춘기가 된 아들을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잠자게 했으니 섹스에 문제가 생긴 것은 뻔한 일이었다. D씨는 섹스 문제가 많았다. 초등학교 6학 때까지 엄마의 유방을 만지면서 잠이 들었고 어쩌다가 아버지와 손이 마주치면 부끄럽고 두려웠다고 했다. 엄마의 몸을 만지는 아버지가 이상해 보였다고 했다. D씨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옥상에 옥탑방을 만들어서 D씨는 옥탑방으로 옮기게 되었고 옥상에서 이웃에 사는 누나들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거나 자위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아버지가 숨겨논 포르노 비디오를 보게 되었고 그 비디오가 7개-9개 정도 되는 것을 시간이 나면 혼자서 거의 매일 같이 보고 자위행위를 시작했다고 했다. 심한 자위행위 때문에 학교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성적이 올라가기 시작해서 중학교 1학년 2학년 때는 반에서 1등-2등을 다투며 좋았던 성적이 아버지의 포르노 비디오를 보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서 죽자고 공부를 했으나 더 이상 성적은 올라가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비밀리에 숨겨논 포르노 비디오를 아들이 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했다. 보고 나서는 언제나 비디오를 제 자리에 그대로 놓아두었기 때문이었다. 자위행위가 심해져서 학교 담임 선생님이든 여 선생님을 상상하면서 자위행위를 했고 이후에 그 선생님과 사이가 서먹해졌다고 했다. 죄의식 때문에 학급에서 1-2등을 하면서 선생님의 귀여움을 독차지 했던 D군이 스스로 거리감을 두게 된 것이었다.

D씨의 포르노 테이프 사건은 그 후에도 계속되어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신의 포르노 비디오 문제를 친구에게 이야기 했고 그 친구가 불에 태워 버려라고 해서 7개-9개의 포르노 비디오를 불에 태워 버렸다. 이후에 아버지가 자신의 숨겨놓은 비디오 테이트가 없어진 것을 알고 직접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어머니를 통해서 D가 비디오 테이프를 없애 버렸는지 물었으나 거짓말로 절대로 손대지 않았다고 했다. 이 문제로 생긴 죄의식 때문에 아버지와 눈맞추기를 피했고 아버지와는 7년 동안 한마디도 서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D씨는 이후에 결국 고등학교 성적의 하락으로 대입에서 실패 했고 재수생 생활을 1년동안 했다.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는 소각했지만 자위행위는 계속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위행위 때문에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재수생 때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수능 시험을 2개월 앞두고 이제 공부다운 공부를 해 보자고 결심을 하고 마음을 안정 시키고 공부에 몰입했다. 공부가 잘 되었다 2개월 동안 열심히 한 결과 수능에서 전국에서 2%내에 들어가는 성적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후에 D씨는 학교 성적이 부진해서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대학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서울에 있는 이름있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학생활도 순탄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언제나 외톨이로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D씨가 불평하는 것은 항상 자신은 최선을 다 했는데도 나중에는 자신의 잘못으로 되돌아와서 손해를 본다고 했다. 열심히 일을 했는데도 상사들이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잘못한 것은 모두 자신이 뒤집어 쓴다고 했다. 억울하다고 했다. 대학 생활이 시작되면서 여성들과 사귀는데 열을 올렸다. 특이한 점은 여성들과의 사귐에 섹스 문제가 말썽을 일으킨다는 점이었다. D씨는 명문 대학의 여학생들과 잘 접촉했고 또 상류층에 속하는 괜찮은 여성들과 데이트를 하게 되었으나 언제나 몇 번 만난 후에는 섹스 강요로 이후에 데이트는 끊어져 버렸고 그 여성들에게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는 점이었다.

대학 재학 중에 호주에 6개월 어학 연수를 갔으나 효과는 별로였다. 호주의 민간인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했으나 주인과 마찰 때문에 그 집에서 나와서 한국 학생과 같이 차취를 하다가 귀국했다고 했다. 어학 연수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으나 이 어학 연수가 나중에 대학원과 미국의 카츄사로 복무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군 입대를 하기 위해서 학사 장교 시험에 합격해서 훈련을 받다가 도중에 탈퇴해서 다시 귀향했다. 이후에 미군 카츄사 모집에 합격해서 군대 생활을 미군들과 같이 했으며 이 때 영어 공부에 몰두 해서 미군들과 경쟁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영어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군 복무 중에 직속 상사인 미군과 갈등을 빚기도 했으나 큰 문제는 없었다. 언제나 직장 상사들과 갈등을 빚는 문제는 D씨에게 과제로 남아있었다.

군 복무 후에 명문 대학원에 합격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D씨는 지금까지 자신의 전성기가 대학원에서 2년 동안 그리고 국가 기관의 공채에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할 때까지의 기간이 인생에서 최고의 절정이었다고 스스로 이야기했다. 대학원 때는 동료들과 경쟁을 하면서 당당하게 자신감있게 활동했고 동료들이나 교수들의 칭찬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고 했다. 질문도 하고 열심히 과제도 하고 레포트도 하고 다른 학과의 이름 있는 명강의에도 참가해서 열띈 토론에 참가해서 성적도 기대 이상으로 얻었다고 했다. 그러나 섹스 문제와 동료들과의 갈등 문제는 그대로 안고 있었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참으면서 이를 악물고 전투처럼 싸워 이겨야 했다고 실토 했다.

2명을 뽑는 국가 공채 시험에서 당당하게 인터뷰에서 1등으로 취업을 했고 입사 때는 많은 상사들로부터 기대를 한 몸에 모았으나 문제는 직장 생활 2년 정도 되는 시점에서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명문 대학 출신의 미모의 부인과 결혼을 했으나 결혼 생활 1년 6개월에서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어 치료자를 찾게 된 것이었다. 직장에서 열심히 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면 할수록 실망만 안겨 주게 되었고 동료들 사이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어 자신의 노력에 비해서 얻는 것이 없다는 인식이 위기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었다. 부인과의 갈등도 한 몫을 했다. 부부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불 같이 내고 집에 있는 물건들 즉 종이나 책을 집어 던지는 행동이 점점 늘어나면서 부인으로부터 이혼 당할지 모른다는 위협과 직장에서 해고될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D씨는 벼랑 끝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D씨는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면서 자신이 이대로 몇 년을 뻐틸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제 벼랑끝에서 더 이상 뻐틸 힘이 없다고 도움을 호소 했다. 지금까지는 죽을 힘을 다해서 뻐티어 왔으나 더 이상 에너지의 고갈로 뻐틸 수가 없다고 했다. 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밥통이 머리에 날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직장에서 언제 실수를 할지 몰라 두려워해서 한시도 휴식을 취할 수가 없으며 직장의 동료들이 쑤근 거리면서 자신을 욕하는 것처럼 느껴지져 몸둘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론적 근거

D씨는 처음에 와서 분석 치료 상담을 해 나가면서 매번 마다 자신의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다. 말끝 마다 이 문제의 원인을 이야기 해 주세요. 무엇 때문에 제가 이렇게 힘들고 또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반복 실패만 되풀이 하게 됩니까? 라고 되풀이 해서 물었다.

D씨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보기로 하자.

 D씨의 근본적인 문제는 할머니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가 아버지 사이가 좋지 않고 갈등적이어서 할머니는 아버지와 서로 30년 동안 말문을 닫고 살았으며 할머니가 며느리를 구박하거나 아니면 D가 어린 시절에 양육을 보살펴 주지고 않았고 언제나 자신의 것만 챙기고 한 개도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할머니가 중풍으로 어머니가 모든 뒤치닥거리를 하면서 효부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나 할머니는 어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한 D씨가 할머니에게 폭언과 위협을 한 후에 얼마 되지 않아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D씨의 이러한 행동에 처벌이나 책망을 한 적이 없으며 D씨 역시 할머니에 대한 태도에서 죄의식이 전혀 없었다. 문제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갈등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언제가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고 이 분위기가 D씨의 어린 시절의 감정적인 면에 영향을 미쳐서 늘 불안과 긴장의 상황에서 자라게 해서 생리적으로 어떻게 마음을 안정시키고 긴장을 풀어내는지를 배우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다. 가족들은 같이 식사를 하면서 웃으면서 화기 애애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 했다.

할머니는 나르시즘적 성격 장애를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할머니는 이북에서 피난을 온 사람으로 친족들이 북한에 살고 있었고 지적 수준은 높고 외모도 깔끔하고 인테리 여성이었으나 공감 능력이 없어 D씨의 아버지를 키우면서 친밀감을 심어주지 못했고 항상 엄마의 욕구 충족을 위한 대리물로 아들을 사용했다. 아들은 엄마의 이런 점에 질식해서 엄마를 멀리하고 두려워했고 이것이 대물림 된 것이었다. 아버지는 D씨에게 어린 시절부터 친밀한 신체 접촉을 제공하지 못했다. 사랑이 신체 접촉으로 전달된다는 것을 아버지 자신의 엄마인 할머니 한데서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냉전으로 가족 분위기는 늘 썰렁했고 이것이 자녀들의 양육에 영향이 미친 것이었다. D씨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돌아오면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긴장되고 할머니와 힘 겨루기에서 이기기 위해서 쌀쌀하고 일부러 집안 분위기를 긴장으로 몰고 갔다. 여기에 회생자가 D씨였다. D는 아버지의 화풀이 대상이었다. 할머니에 대한 분노가 D씨에게 방향이 바뀌어 흘러간 것이었다. D씨는 아버지만 집에 들어오면 긴장되고 어쩔 줄 몰라 했다고 했다. 언제 처벌이 따라올지 몰라서 전전긍긍했다는 것이 이것을 증명해준다. 반면에 아버지와 누나 사이에는 관계가 좋았다고 했다. 누나는 한번도 아버지에게 얻어 맞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힘 겨루기는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했다. 어머니는 결혼 초반기부터 양육보다는 맞벌이를 택했고 아들 D를 친척들이나 가정부 손에 맡겼다고 했다. 어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좋아서 유명인들의 옷을 주문 받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고 양장점이 잘 운영되어 언제나 바빠서 저녁 10시 경이 되어야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이런 엄마의 행동 뒤에는 집안의 분위기에 질식해서 무의식적으로 엄마가 집을 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할머니와 남편의 갈등 속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고 개입할 수가 없다고 본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개입을 해서 차라리 할머니를 집을 얻어서 따로 살게 했더라면 D씨에게 그렇게 고통스런 문제를 안겨주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일에만 몰두 해서 스스로 가족 문제를 외면한 것이었다. 이 문제는 이후에 D씨가 치료자에게 심리분석 치료를 받은 후 2개월 정도 지나서 어머니에게 자신의 문제의 핵심을 이야기했을 때 어머니는 전혀 아들의 문제점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머니는 아들 D씨가 언제나 열성적으로 자신의 일을 잘 해 나가고 있었던 것으로 잘못 보고 있었다.

가족의 이런 분위기가 D씨의 어린 시절에 동료들과 감정을 나누고 친밀감을 개발해 나가는 것을 배우지 못하게 했다. 언제나 긴장되고 언제 아버지의 처벌이 따라올지 모르는 분위기에서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학교에 가고 오는 것, 공부나 과제를 하는 일, 심부름을 실수 없이 하는 일 등 외형적인 것에만 집중되었을 뿐 정작 자신의 속 마음을 이야기하고 친구를 사귀고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배우지 못한 것이 이후에 D씨의 초등학교 시절과 중,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 것이었다. D씨는 친구들을 이익에 의해서 좌우되고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고 친구를 믿었다가 발등이 찍힌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한 친구가 D씨와 친하게 지냈다. 그 친구에게 온 갓 이야기를 다 틀어놓았다. D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했으나 친구는 한번도 자신의 일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 분석되어졌고 이후에 D씨가 성적이 하락하고 힘들어지자 그 친구가 이유도 없이 멀리하는 바람에 그 친구에 한데서 얻은 배신감으로 친구를 사귄 것이 결국 나에게 돌아는 것이 이것 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친구를 불신하고 필요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 계기 되었다. 그 친구 역시 문제를 가진 친구였다고 분석되어졌다. 이유는 자신의 문제를 절대 노출 시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D씨의 이야기를 들어주되 자신의 문제를 숨긴 것으로 보아서 그 친구는 진실된 친밀감으로 서로 마음을 열고 감정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러나 D씨에게는 약 7년 동안 그 친구에게 온갖 어려움을 하소연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D씨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지나친 섹스 자극을 많이 받았음이 분석되어졌다. 아버지는 국내에서 유명 출판사에 고급 기술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다양한 잡지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집에는 늘 아름다움 여성들의 몸매 사진들의 잡지들이 널려 있었다. D씨는 이러한 것들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D씨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아버지와 어머니와 사이에서 한 방에서 잠을 잔 것 등이 D씨의 섹스 욕구 발달에 자극을 주어서 사춘기 시절에는 자위행위에 컨트롤을 잃어버렸고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부주의로 숨겨놓은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를 훔쳐보게 되어 이것이 중학교 3년 이후 고등학교 시절의 공부에 집중 정도를 간섭해서 마음의 안정을 가져올 수 없었고 대입에 실패하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대학 입학 후에 이성과 사귀면서 섹스 욕구와 사랑이 분열되어 이성관계를 섹스 관계로 오인해서 만나는 여성들마다 섹스로써 접근해서 여성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결국 헤어지는 아픔으로 연속되었다. 이성 관계는 섹스 관계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이고 섹스는 사랑의 부산물임을 몰랐던 것이었다. 여기에서 서로 따뜻하게 감정을 나누고 친밀하게 대화를 해 나가는 기술이 결여되어 이성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원인은 어린 시절에 아버지 어머니가 친밀 감정을 나누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어머니와 D씨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D씨의 자기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결함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D씨에게 대인관계에서 친밀감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D씨가 요구하는 경제적인 문제는 모두 들어주었다고 했다. 책을 산다든지 용돈이 필요하다든지 과외 선생님을 제공해준다든지 하는 일들은 적극적으로 보살펴주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내면을 틀어 놓고 이야기를 해 나가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제공해주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자아 표현은 주로 0세 -5세까지의 과정에서 어린이가 배우게 된다. 엄마와 아기가 하나된 관계 경험에서 엄마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아기는 자신의 자아를 발견해 나간다. 0세-1살 때까지는 아기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는 아기의 얼굴 표정을 보고 아기의 욕구를 파악해서 아기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 엄마의 욕구보다 아기의 욕구가 우선해야 하고 아기의 욕구가 엄마 한데서 거울처럼 비치어서 충족되어져야 한다. D씨의 엄마는 이러한 것을 가정부에게 맡겼고 맞벌이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에 매달렸고 경제적으로는 D씨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친밀감을 개발하는 것이 결여되어 이것이 초, 중, 고등학교의 친구 사귀기에 문제를 일으켰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꼬리표를 달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D씨 뿐만 아니라 누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누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무용, 노래, 공부를 잘해서 귀여움을 받았으나 중,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공부가 하위로 밀려났고 결혼 배우자를 잘못 선택해서 남편의 교통 사고로 인해서 D씨의 부모님이 재산을 처분해서 빚을 갚아주는 경제적 어려움까지 몰고 왔고 결국은 파혼으로 지금은 우울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누나의 불행을 보면서 D씨는 누나가 아직도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언제나 사귀는 사람들이 누나와 닮은 비슷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D씨는 자신의 문제점들을 이미 초등학교 시절에 증세 행동으로 노출을 시켰는데 부모님이 이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학교에 10일 동안 가지 않았고, 할머니의 지갑에서 돈을 훔친 것이나, 가출해서 지하철을 타고 1시간 가량 방황한 것,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오줌싸개였다는 것, 그리고 친구가 없이 전자 오락으로 소일 했다는 것 등은 자세히 관찰하면 문제 행동인데도 부모님들은 그러한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D씨가 이런 고통들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의 문제를 성인이 되어 결혼 후에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난 후에 치료자의 권유로 자신의 문제점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해 보라는 권유에서 비로소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그런 문제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그것을 이야기해준다. 한번은 고등학교 때 울면서 엄마에게 공부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 했더니 어머니는 사촌 형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2-3일간 지내게 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과외를 받고 싶다고 해서 3개월 동안 고액 과외를 받아본 적이 있었으나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D씨에게 외형적인 문제는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으나 내면적인 문제는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다음 페이지에서 D씨의 문제 해결 과정이 계속됩니다.